[파이낸셜리뷰=남인영 기자] 드라마나 영화 속 재벌들은 회사의 악재가 발생했을 때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고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한진그룹의 조현민씨의 물컵 갑질, 이명희 이사장의 백화점식 갑질 의혹 등 연일 이어지는 악재에도 대한항공의 이사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다.
게다가 지난 2014년 땅콩회항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조현아씨는 지난달 29일 한진그룹 호텔사업을 총괄하는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의 사장으로 경영에 슬그머니 복귀했다.
갑질로 실정법을 위반해 단죄를 받았지만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킨데 대한 회사 차원의 처벌은 없었다. 오히려 3년 3개월이 지나자 회사 경영진에 다시 합류시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련의 상황에 대해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와 마비된 감사기능, 사내 견제세력의 부재에서 비롯돼 갑질과 사과, 퇴출, 복귀, 또 다른 갑질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너의 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당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칼호텔네트워크 등 관련 회사의 이사회는 물론, 어디에서도 반대 목소리나 문제제기가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 석태수 사장 등 3명의 사내이사와 변호사 등 3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이들 사내이사들은 대한항공 사주나 직원 출신 임원으로 사주의 의중을 거스르는게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사주나 사내이사의 전횡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사외이사들도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진칼의 사외이사 중 한 명인 김종준 사외이사는 조 회장의 경복고등학교 후배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이기도 하다.
또 한진칼과 대한항공 두 곳에서 모두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이석우 법무법인 두레 변호사도 조 회장의 경복고 동문이다. 이 변호사는 지난 2007년 대한항공과 처음 인연을 맺어 사외이사 선임기간이 10년을 초과했다.
이 같은 상황은 대한항공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조양호 회장 일가가 한진그룹의 설립자지만 회사의 소유자는 아니다. 대한항공은 조씨일가의 주식 지분율이 33.34%, 지주사인 한진칼은 28.9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한항공 직원이나 국내외 소액주주 지분이다.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엄격히 책임을 묻는 것이 자본주의 회사의 기본 생리이자 작동원리다.
하지만 국내 대다수 재벌기업들은 자그만 지분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그 책임에는 둔감한 것이 현실이고 대한항공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가장 큰 이유는 회사내부에서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주권력을 견제할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노조관계자는 “대주주가 어떤 결정을 하면 반대할 사람이 없다”며 “전형적인 재벌기업의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외부에서 영입된 교수나 변호사 출신의 사외이사들은 주요의사결정에 대해 별 역할을 못하고 사주가 한 마디하면 꼼짝 못한다”며 “사내이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문제를 일으킨 조현아, 조현민씨 자매나 안방정치하는 분은 회사내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사고나 칠바엔 물러나 주는게 맞지만 노조로서도 사측이 인사로 탄압하고 정보가 철저히 차단돼 있어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내부상황을 전했다.
때문에 이 같은 사주일가의 전횡이 제왕적 권력에서 나오는 만큼 이에 대한 견제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핵심은 자격미달의 사주일가를 경영전면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아무런 능력도 도덕성 검증도 안된 함량미달인 사람이 사주라는 이유로 경영진이 되는 것이 문제”라며 “부당채용이나 회사에 손해를 끼쳐 실형을 선고받을 때 강력한 조치가 이뤄지도록 상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조가 추천하는 노동이사제 도입이나 재벌 오너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사외이사 확충을 통해 이사회의 견제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시급히 검토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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