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얼롱, 현대판 노비문서란 지적도
[파이낸셜리뷰=윤인주 기자] 이커머스업계가 치킨게임이 가속화되면서 이들의 누적적자가 가히 천문학적이다. 쿠팡·위메프·티몬이 지난해 낸 적자를 모두 합하면 약 84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약 1000억원대의 적자를 낸 11번가까지 합하면 지난해에만 이커머스 시장에서 약 1조원의 손실이 난 셈이다. 이베이코리아가 유일하게 약 620억원의 흑자를 냈다.
이들은 올해를 ‘적자 축소의 해’로 삼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 중에선 사모펀드(PEF)로부터 외부자본을 확충받은 기업이 많다.
통상 펀드들의 엑시트(출구전략) 기간은 3년이다. 이 기간내에 적자를 줄여 상장(IPO)하지 않으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해외 투자자들에 배당이 어렵다.
‘드래그얼롱’이란?
이러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PEF들은 투자계약시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조항을 기본 옵션으로 탑재한다.
드래그얼롱이란 소수 주주가 지배주주 지분까지 끌고와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조항을 의미한다.
투자 기업의 가격 하락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투자 지분을 자유롭게 매각해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다. 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프로텍션 조항인 셈이다.
예를 들면, 11번가는 올 6월 SK플래닛에서 분사해 별도의 회사로 새롭게 출범했다. 11번가는 새 출발과 함께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1번가 지분 40%를 확보한 국민연금, H&Q 등은 SK 측과 계약시 드래그얼롱 조항을 맺었다.
11번가를 일정기간(3~5년)안에 상장하지 못하면 이들이 대주주인 SK텔레콤 지분(60%)까지 동반 매도해 경영권을 넘길 수 있다는 의미다.
티몬도 지난 2015년 글로벌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약 8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약 1200억원의 적자를 낸 만큼 올해는 이 규모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목표다.
매년 매출은 20%씩 성장하지만 창업 후 8년간 적자에다 재무적투자자(FI)의 엑시트 기한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드래그얼롱, 현대판 노비문서란 지적도
벤처투자(VC) 업계에 따르면 드래그얼롱과 확정 수익 지급을 포함한 계약서가 벤처투자 시장에서 횡행하고 있다. 투자 만기를 앞둔 기업은 언제 강제로 매각될지 전전긍긍이다. 관리감독에 나서야 할 중소기업청은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A사 대표 김모 씨는 “매출 신장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데도 투자자들은 ‘잘하지 않으면 인수합병(M&A) 당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말로 압박을 주고 있다”면서 “자금 조달이 시급한 VC들이 염가로 기업 매각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벤처캐피탈협회는 지난 2013년 벤처투자 표준투자계약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가이드라인에 드래그얼롱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확정 원금을 전제로 투자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VC는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A사 투자계약서에는 드래그얼롱 조항뿐만 아니라 ‘투자 원금과 연복리 8.5% 등 이자액에 미치지 못할 경우 경영지배자와 보통 주주에 우선해 위 금액을 우선 배분받기로 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됐다.
이 회사에 투자한 5개 VC 모두 같은 형태의 계약을 체결했다. 모험(벤처)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할 VC가 PEF보다 더한 회수 조건을 스타트업에 내걸고 있는 셈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드래그얼롱은 대주주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옵션부 투자 조항”이라며 “특정 시점까지 기업공개(IPO)에 성공하지 못하면 VC 주도로 M&A(기업인수합병)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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