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예수님 영접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 손에 이끌리어 성당에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잠자리채 같은 바구니를 돌리며 돈을 넣게 하는 모습을 보고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예배 중에 돈을 걷어야만 할까? 그 후 난 성당 근처에 가기가 싫어졌다.
여동생들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나갔다. 난 교회를 예배당이 아니라 연애당이라고 생각했다. 남녀가 쉽게 교제 할 수 있는 곳 이라고 여겼다. 동생들이 “오빠 교회 가자”고 하면 나는 무신론자로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를 좋아 한다고 했다. 나보다 착하고 올바른 교인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고교시절 ‘기독학생반’을 ‘지옥 학생반’이라고 놀리곤 했다. 나는 고교시절 특별활동으로 JRC와 보리회(불교학생회)에 참가하였다. 삼귀의(三歸依), 사홍서원을 외우며, 조계사, 수덕사에 가서 참선도 하고, 양주동 박사와 서정주 시인, 청담스님, 혜명스님의 강론을 열심히 듣기도 했다. 대학시절은 원불교 집회에도 참여 하였었다. 그러나 교회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우리 집에 교인들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였다. 교회 부흥회에도 참석치 못하게 하였다. 교회를 핍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주말이면 테니스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는 나에게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를 가면 안되느냐”고 한다. 내가 테니스를 편하게 치고 싶어서 승낙했다. 그러나 집안에 교인들을 절대로 불러드리지 마라고 하였다. 우리 아내는 참으로 조용히 교회를 다녔다. 평소에 나보고 교회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1989년 11월 29일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게 교회를 핍박하던 내가 예수님을 영접 하여 교회를 나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통해 나를 부르신 것이다. 아내의 간절한 남편구원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이다. 오산리 국제금식기도원 대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내가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자아가 모두 무너져버렸다. 내가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그 은혜도 모르고 있다는 강한 경고 메시지를 받고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되었다. 회개 눈물은 모든 죄악을 씻어 낸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 후 매일 새벽 기도 시간에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 를 간구하게 되었다. 40일 새벽기도를 마치는 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또한 하루 금식하면서 술 담배 여자를 한방에 끊게 되었다. 특히 담배를 하루 3갑 이상 피던 골초가 너무나 쉽게 끊게 된 것이다. 자세한 간증은 생략한다.
영업부서에 오랜 세월 근무하다보니 거의 매일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늘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꼬이곤 하였다. 그런데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본 술친구들은 점점 나의 곁을 떠나고 있었다. 모처럼 동창회를 나갔는데 내 앞자리에는 앉으려고 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외톨이 왕따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술자리보다 더 좋은 자리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요셉선교회 회원들과의 만남이 너무 은혜스로 왔다. 담배와 술을 끊으니 건강도 좋아지고 돈도 절약되고 감사 할 줄 아는 지혜를 깨달아 수지맞은 사람이 된 것이다.
매일 매일 회사를 위한 기도를 하던 중 어느 날 기도의 응답이 왔다. 회사 내에 신우회를 만들어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이 닥아 온 것이다. 교회 다니는 회사 직원들을 핍박하였던 나는 바로 신우회를 창립하여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믿음의 회사 직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함께 식사를 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게 되었으며 신우회 회원들은 모범적인 일꾼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직장 내에는 우리 신우회 모임을 칭송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심하게 비난하는 부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강하게 비난하던 직원이 나중에 신실한 믿음의 형제가 되어 복음전도의 왕이 되기도 하였다. 참으로 성령의 힘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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