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중년으로 접어들어
① 88 서울 올림픽
1988년 9월 17일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날이다. 또한 내가 중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 때 올림피아 해운이 창립되었으며, 나는 영업부장으로 회사를 먹여 살리는 중차대한 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제일 먼저 부서간의 융화 및 협력을 도모하고, 영업력을 확장하고, 공과 사를 구별하여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추진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회사 일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그 결과 지금도 그 당시 좋은 추억들을 회상하는 말들을 함께 근무하였던 직원들로부터 듣기도 한다.
② 교육이 있는 곳에 밝은 미래가 있다,
1991년 10월 1일 부 선경그룹 자회사인 YKL에 임원으로 취임하였다. 그 당시 나의 꿈은 ‘농촌 살리기‘로 3년만 열심히 근무하여 좋은 회사를 직원들에 물려주고 난 후, 농촌살리기를 지원 할 수 는 후원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우선 직원들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제일먼저 정신 개척을 위해 100여명의 간부 직원들로 하여금 3박 4일 가나안 농군학교 새마을 교육을 이수하게 하였다. 새마을 교육을 이수한 직원들의 반응은 2가지로 나누어 졌다. ’유익했다‘는 사람과 ’시간이 아깝다‘라는 부정적인 사람들로 구분되어졌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직원들은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부정적인 반응 보였던 사람은 아직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 할 둘 아는 긍정의 생각이 성공의 기본요소임을 알 수 있다.
새마을 교육을 이수한 부서장 급 간부들을 중심으로 직원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들로 하여금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교안을 작성하여 제출하게 하였다. 해운실무, 무역실무, 해운 영업, 부정기선, 신용장통일규칙, 성공적 영업전략, 직원 예의범절, 성공적인 기업경영전략 등 해운회사 운영 전반에 관한 내용의 참고 도서를 구입하여 읽고 사내교육용 교안을 준비하게 하였다. 이를 토대로 하여 출근 1시간 전에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직원들의 반응도 역시 2가지로 나타났다. ‘참 유익하다‘는 긍정적인 의견과 왜 아침잠도 제대로 못 자게 귀찮게 하냐?‘ 는 불만의 목소리도 많았다. 긍정적으로 열심히 교육에 임한 직원들은 지금도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습관으로 기업 경영을 잘 수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수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사내 연수 교육이 필요 한 것으로,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과 선경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꿈이 있는 곳에 미래가 있드시교육이 있는 곳에 밝은 미래가 있다.
③ 물류가 경쟁력이다
YKL(You Kong Line)은 해운 대리점 회사로 가장 많은 외국 선사들의 한국 총대리점 업무를 맡고 있었다. 선경그룹이라는 배경이 해외 선사들을 끌어드리는데 막강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내가 YKL에 조인하기 전에 이미 폴랜드 국영선사인 POL(Polish Ocean Line)을 비롯하여, 베트남 국영 선사인 VOSCO(Vietnam Ocean Shippoing Company), 프링스 베트남 합작회사인 Gematrans, 에디오피아 국영선사인 ESL(Ediopia Shipping Line), 싱가폴 탱크 콘데이너(TCL), 일본 콘테이너 리즈 회사(TOL) 등의 한국 총대리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취급 업무가 매우 다양했다. 정기선 뿐 만 아니라, 부정기선 영업도 활발하였다. 해외 선사의 대리점 권을 유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미 많은 대리점을 유치하고 있었다..
1991년 10월 1일 YKL(Yoo Kong Line 유공해운) Agency/ YKL Express 임원으로 취임하는 첫날부터 전 직원 회식이 있었다. 나는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제대로 취임신고를 하였다. 회식 후 2차 3차를 하는 사이 직원들과 서먹함이 없어졌다. 그래서 술자리가 필요한 것 같다. 전 대표이사는 많은 대리점을 유치한 능력의 소유자 이었지만, 직원들 사이에는 평판이 좋지 않아 결국 퇴사하게 되었다. 그 만큼 회사 직원들이 강성이라는 점이다. 각 부서장들도 성격이 강해 상호 협조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회사를 회사답게 하려는 나의 목표는 가장 성격이 강한 부서장들을 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직원교육이었다. 1년 동안 꾸준히 노력 한 결과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두 가지 목표가 모두 달성되어 회사 분위기가 좋아지게 되었다.
어느 날 싱가폴에 출장 갈 일이 생겼다. 그 당시 해외 출장은 모두 경영진이 가곤 하였는데, 나는 직원들의 국제적 경험을 통해 사기를 고취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대표이사에게 건의 하여 업무 부서장을 대신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출장 중인 직원으로 부터 싱가폴에 있는 모 해운회사가 중남미 정기선 운항 한극 대리점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에 열심히 중남미 시장을 분석하여 완벽한 대리점 제안서를 제출하여 드디어 "Sea Mar Arhentina Line'의 정식 대리점으로 선정되었다. 오너는 아르헨티나의 유명 인사로 재력과 권력이 막강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보고 아르헨티나에 급히 와 달라는 것 이었다. 브에노스아이래스에서 한국- 아르헨티나 정기선 취항 기념 리셉션 파티에 아르헨티나 주재 한극 기업인들이 많이 참석하도록 독려하고 있는데 한국 총대리점 측에서도 꼭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달라는 것 이었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 비자를 받으려면 1주일 정도 소요되었으나,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가 직접 관여하여 바로 발급해 주어 36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하여 브에노스 아이레스(good air)에 도착하게 되였다. 최고급 호텔 VIP 룸에 4박 5일 머물면서 주 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KOTRA, 삼성, 엘지, 대우, 현대 등을 비롯하여 많은 한국기업들을 만나 ‘씨마아르헨티나 라인‘를 홍보 하였다. 이 때 내가 외대(한국외국어대학)를 졸업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아르헨티나에서 활동을 하는 대다수 기업의 임직원들이 외대 서반어과 졸업생들 인 것이었다. 많은 현지 임직원들이 나를 대학 선배로 극진히 대하는 모습을 본 본사 회장을 비롯한 운영진들은 한국 대리점을 잘 선정했다고 감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취항기념 리셉션 파티에 이어서 한국에서도 최고급 파티를 개최하였다. 특히 동 라인을 유치함에 따라 그 당시 한국 - 아르헨티나/브라질 구간 해상운임이 USD4,000/20‘로 매우 비싼 편이었던 것을 반값인 USD2000/20'로 하향조정하게 되어 우리나라 수출입 회사에 큰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세계 경제에 있어 물류는 매우 중요하다. ‘물, 기술, 물류‘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3대 요소라고 한다. 기름이 없으면 불편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이 없으면 생명을 잃는 것처럼 물이 오일보다 더 중요하다. 또한 기술(High Tecnical)개발이 없으면 국제경쟁력을 잃게 된다. 한편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운송 수단에 의해 사람과 재화가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인 물류비용을 최소화하여야만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운송사업은 운수가 따르는 운수사업이라고 한다. 재고가 남지 않는 장사이기 때문에 항공운임 해상운임의 변동이 매우 심하다.
전체적으로 장기적인 경제흐름을 잘 예측하지 못하여 항공회사와 해운회사의 운명이 정해지는 사례가 빈번한 것이다.
왜 물류가 중요한지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지하철 운행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타고 내라는 방법 즉 물류가 중요하다. 승객이 내리기도 전에 타려는 승객이 있으면 자연히 승하차 시간이 지연되어 운행시간이 길어져 효율성을 잃게 된다. 지하철 타기 한줄 서기에서 두줄 서기로 변경한 것 참 잘 한 것이다. 더 개선 할 점도 많이 있다. 움직이는 동선을 잘 생각하면 물류비를 줄이게 된다. 상품이 생산되어 소비자의 손에 들어 갈 때까지의 물류비용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선진국일수록 물류비 개선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한진 해운이 문을 닫게 된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물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류가 경쟁력임에 틀림없다.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걷기 운동,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면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기도 하다, 로칼 푸드, 제철음식도 물류비를 줄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