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공신 ‘아로나민’
1941년 일동제약 창업자인 고(故) 윤용구 회장은 당시 한국전쟁으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남녀노소 모두 먹을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개발하기 위해 창업을 시작했다. 당시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은 비타민이 부족하기 쉬웠고, 특히 비타민B 결핍으로 인해 각기병 등 각종 질병에 걸리는 사람이 흔했다. 이에 윤 창업주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63년 비타민B 종류인 프로설티아민(비타민 B1) 합성에 성공하고 리보플라빈(비타민 B2)까지 더한 아로나민정을 발매하게 된다. 이어 1970년 프로설티아민을 개선한 성분인 푸르설티아민(활성비타민 B1), 리보플라빈부티레이트(활성비타민 B2), 인산피리독살(활성비타민 B6), 히드록소코발라민(활성비타민 B12) 등 활성비타민 B군에 비타민C와 비타민E를 보강한 ‘아로나민골드’를 선보였다. 당시 국내 최초로 ‘활성비타민 B1’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고 추가로 B2, B6, B12 등 타제품에는 사용되지 않는 성분을 함유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아로나민골드의 ‘활성형 비타민’은 장에서 쉽게 파괴되지 않고 흡수가 잘돼 생채 내 이용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지속성이 긴 특징으로 국내 제약 산업의 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소비자층과 변화하는 시장에 발맞춰 일동제약은 항산화제를 보강한 ‘아로나민씨플러스’, 눈영양제 ‘아로나민아이’, 고함량 활성비타민이 함유된 ‘아로나민이엑스’ 등 시리즈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아로나민은 출시 초창기부터 탁월한 약효가 입소문이 나면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지만, 시중에 경쟁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동제약은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에 윤 창업주는 마케팅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며 위기를 극복해 왔다.◇성공 비결 ‘독특한 마케팅’
아로나민의 성공 비결로는 장수 브랜드의 명성, 마케팅, 가격 등이 꼽히는데, 업계에서는 그 가운데 독특한 마케팅 영향이 컸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발매 초기였던 1966년 복싱 세계 챔피언 김기수를 모델로 등장시킨 광고는 한국 광고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국내 ‘스포츠 마케팅’의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아로나민의 광고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이어진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는 한국 최초로 국외에서 개최된 광고 페스티벌에 출품돼 당당히 입상하기도 했다. 해당 광고는 고열작업자를 시작으로 파일럿, 프로그래머, 건축기사 등 12명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군들이 등장해 고된 일로 지친 근로자들에게 ‘하면 된다’는 신념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였다. ‘의지의 한국인’·‘체력이 국력’ 등 이제는 관용어구로 흔히 쓰이는 이 문구들은 당시 아로나민 광고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최근에도 아로나민은 ‘아로나민 골드를 먹은 날과 안 먹은 날의 차이를 비교해 보라’는 카피로 화제에 오르는 등 여전히 기억에 남는 문구들을 고안해내며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이처럼 일동제약은 시대별로 대중의 취향에 맞춘 적극적인 광고전략을 선보이며 아로나민의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