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전문기업에서 ‘냉난방’ 전문기업으로
귀뚜라미그룹은 연탄이나 나무를 때서 구들장 난방을 하던 1962년 창업주인 최진민 회장이 서울 마포에 설립한 ‘신생보일러공업사’를 모태로, 구들장 대신 파이프를 깔아 온수로 온돌난방을 하는 연탄보일러를 개발한 원조 보일러 기업이다. 귀뚜라미그룹은 국내 최초 집단주택인 마포아파트 450세대에 난방, 급탕, 취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연탄보일러를 시공하며, 바닥 난방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온돌 보일러 시대를 열었다. 귀뚜라미그룹은 1969년 ‘고려강철주식회사’로 법인설립을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보일러 사업을 시작했고, 1970년대 한국 기름보일러를 규격화한 기름보일러 KS1호를 개발해 ‘기름보일러 표준화’에 앞장섰다. 또 1980년대에는 설치가 편리한 일체형 기름보일러를 개발해내면서 기름보일러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국민소득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기름보일러 수요가 증가했는데 기름 탱크의 크기가 작은 데다가 기름이 완전히 떨어지면 기름을 보충할 때 공기를 제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귀뚜라미그룹은 당시 기름이 떨어지기 하루 전에 실내온도 조절기에서 ‘찌리릭 찌리릭’하는 귀뚜라미 소리로 알람 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을 개발해 에너지 기자재 전시회에 출품했다. 해당 전시회 이후 ‘귀뚜라미 소리 나는 보일러’로 유명해졌고, 1992년 회사 상호를 ‘귀뚜라미 보일러’로 변경했다. 유럽식 가스보일러가 국내 시장에 밀려오던 1990년대에는 한국 온돌 문화에 적합한 저탕식 가스보일러를 개발 보급함으로써 국내 보일러 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발판도 마련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1가구 1주택에 가까워지자 보일러 수요가 점차 줄어들었고, 2000년 이후 정체기를 맞으며 보일러 산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또한 당시 ‘냉난방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서 난방 사업, 냉방 사업, 공조 사업을 분리해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해 귀뚜라미그룹은 2000년대 들어 냉난방 복합기업으로 변신을 준비하며 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에 귀뚜라미그룹은 주력인 난방 사업은 고효율 친환경 보일러 제품으로 강화하고, 그룹 전체 비전은 냉난방, 냉동공조 사업 시스템화로 설정했다. 그렇게 귀뚜라미그룹은 2001년 ‘거꾸로 타는 보일러’를 시작으로, ‘4번 타는 보일러’, ‘거꾸로 콘덴싱 보일러’, ‘친환경 저녹스 보일러와 사물인터넷(IoT) 보일러’, ‘인공지능(AI) 보일러’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보일러 기술을 진일보시켰다. 더불어 귀뚜라미그룹은 본업인 보일러 사업에서 기술을 지속 개발함과 동시에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적극적인 인수에도 나섰다. 귀뚜라미그룹은 귀뚜라미범양냉방(2006년)·신성엔지니어링(2008년)·센추리(2009년) 등 국내 냉동·공조 업체들을 인수하고, 원전용 냉동공조기·냉방기·냉동기·공조기·신재생에너지 부분의 국내 최대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보일러 전문업체를 넘어 냉난방 에너지 전문그룹으로 성장했다.◇‘최악의 출발’...연이은 악재
최근 귀뚜라미그룹은 새해 첫날부터 최악의 악재를 만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핵심 생산거점인 귀뚜라미 아산사업장이 지난 1일 큰 화마에 휩싸여 생산라인과 태양광 설비·보일러·에어컨 완제품이 소실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낸 것이다. 귀뚜라미그룹은 천안 아산과 경북 청도에 사업장을 두고 그룹 연간 생산량의 절반씩을 담당하고 있는데, 특히 아산사업장은 보일러 외에 냉동, 공조공장들이 입주해 있어 전체 면적은 청도사업장보다 크다. 또한 귀뚜라미 아산사업장은 보일러, 에어컨, 냉동공조 기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냉난방 복합공장이며, 귀뚜라미그룹이 냉난방, 냉동공조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데 중심 역할을 했다. 귀뚜라미 아산사업장은 지난해 2월 설 명절을 전후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된 바 있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초부터 불미스런 악재를 마주하게 된 셈이다. 귀뚜라미 아산사업장은 지난해 설 연휴 중에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공장의 3밀(밀접·밀집·밀폐) 환경이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화재에서도 건축법을 위반한 가설·증축 건축물이 무더기로 적발된 데다가 자동화재속보장비와 스프링클러 등 화재 초기 대응을 할 수 있는 자동화 된 소방설비를 갖추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받고 있다. 심지어 귀뚜라미 아산사업장은 지난 2007년 12월 냉각탑 철거과정에서도 불이 난 전력이 있음에도 자동화된 소방설비 강화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귀뚜라미그룹은 앞서도 일감 몰아주기, 편법 증여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또다시 불미스런 사안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올해 최악의 악재와 함께 시작하게 된 귀뚜라미그룹이 이처럼 잇따라 발생한 위기와 혼란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주목된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