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전수용 기자] 지난 21일 열린 20대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한국이 곧 기축통화국이 될 것이란 보도도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의힘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총공세 태세를 갖췄고, 더불어민주당은 “말꼬리 잡지 말라”면서 이 후보 엄호에 나섰다.
발끈하는 국민의힘
이에 대해 22일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아무리 한국이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지만 국제금융의 취약성은 여전히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허 대변인은 이어 “기축통화국 흉내를 내겠다며 통화를 찍어내면 원화 가치를 폭락시켜 경제에 위기를 초래할 것이며, 심각하면 제2의 IMF 사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그는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돈을 찍어내 나랏빚을 감당하자는 얘기는, 내가 산 주식이 앞으로 대박을 칠 수 있으니 지금 빚져서 소비해도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론과 다르지 않다”고 역설했다.
또한 “아무리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이 후보는 최고도의 신중함이 요구되는 통화정책을 경기도 지역화폐정책처럼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후보는 위기에 강한 면모는커녕 위기를 만드는 무능과 무식을 보여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미의힘 주장에 힘을 더했다.
윤 전 의원은 “이재명 캠프도 얼마나 당황했을까. 대선을 2주 앞두고 후보가 찰 수 있는 똥볼의 드라마 중 최고치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또 “똑똑한 고등학생도 아는 경제상식도 모르고 대선후보라는 이가 이제껏 국가재정을 망치자 주장해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옹호하는 더불어민주당
그러나 민주당은 이 후보의 ‘기축통화국’ 관련 발언이 적정 국가부채 비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채이배 민주당 선대위 공정시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날 SNS를 통해 “이 후보의 발언은 우리나라 경제가 튼튼하고, 재정건전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좋고, 국가채무에 아직 여력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말꼬리 붙잡으면 논쟁의 본질을 흐리는 무능한 국민의힘과 윤 후보가 걱정”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번 기축통화국 관련 발언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 13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란 입장이다.
박주민 민주당 선대위 방송토론콘텐츠단장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근 전경련에서 발표가 있었다”며 “기축통화라고 쓰는 표현이 원래는 달러만 언급한다는 부분도 있겠지만 최근에 보면 이제 유로화나 엔화 같이 국제 통화도 대부분 기축통화라고 표현한다”고 해명했다.
민주당이 언급한 전경련 반응은?
다만 전경련은 이날 ‘원화의 SDR(Special Drawing Rights·특별인출권) 편입 추진 관련 설명자료’를 별도로 배포하면서 ‘기축통화국’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내놓았다.
전경련은 “SDR 편입을 제안한 배경은 한국이 비기축통화국의 지위로서 최근 재정건정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국제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으로 무역수지마저 적자가 지속될 수 있어 신용등급 하락 등에 따른 경제위기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원화의 SDR 편입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련은 이어 “원화가 SDR에 편입돼도 원화 베이스 국채수요가 곧바로 증가하지는 않기 때문에 국가재정건전성 문제는 거시경제안전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어야만 국제지급과 결제 기능을 갖춘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경제 펀더멘털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축통화국’, 뭐길래?
기축통화국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의는 없다. 1960년 미국 예일대 로버트 트리핀 교수가 처음 언급한 단어다.
한국은행은 기축통화를 '여러 국가의 암묵적 동의하에 국제거래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통화'로 정의했다.
현재는 전 세계 외환거래 및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거래에서 비교적 자주 사용하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스위스 프랑화 등은 흔히 교환성통화라고 평가한다.
한국은행은 기축통화를 충족하려면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제무역결제에 사용되는 통화 ▲환율 평가 시의 지표가 되는 통화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되는 통화다.
한국 원화, 기축통화 조건 충족하나
하지만 원화는 현재까지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한국은행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올해 1월 국제결제통화 비중을 보면 달러가 39.92%로 독보적 1위다.
그 뒤를 유로(36.56%), 파운드(6.3%), 위안(3.2%), 엔(2.79%), 캐나다달러(1.6%), 호주달러(1.25%), 홍콩달러(1.13%) 등이 잇는다. 한국 원화의 비중은 20위권 밖으로 0.1% 수준에 불과하다.
외환상품시장에서도 한국 원화는 변방에 머무른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매 3년 마다 발표하는 '전세계 외환상품조사 결과'를 보면 원화의 거래 비중은 2.0%다. 미국 달러화가 88.3%로 1위였고 유로화 32.3%, 엔화 16.8% 등의 순이었다.
외환보유액 지위에서도 원화는 소수 통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59.2%, 유로 20.5%, 엔(5.8%), 파운드(4.8%) 캐나다달러(2.2%) 스위스프랑(0.2%), 기타(2.9%) 등이다.
한국 원화는 전세계 외환보유액 비중이 0.2% 미만으로 미미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전세계 외환시장 참가자들 가운데 원화를 기축통화국이라고 평가하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세계 곳곳에 흘러넘칠 만큼 유동성이 있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같은 관계자는 이어 "기축통화국은 위기에 안정적으로 견뎌낼 만한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뒤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