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중동전쟁 시작하면서 석유 감산
제1차 석유파동은 1973년 일어난 파동이다. 제4차 중동전쟁 즉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으로 이 전쟁이 시작하면서 OPEC의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석유를 감산하는 동시에 원유 가격을 인상시킨 사건이다. 제3차 중동전쟁 때 아랍권은 석유를 무기화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는 비아랍권 국가에서 원유를 증산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아랍권은 석유를 금수 조치함으로써 석유를 무기화하려고 했지만 동참하는 국가가 적었고, 비아랍권 국가에서 석유를 증산하면서 석유의 무기화가 실피했다.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장관 아메드 자키 야마니가 완전한 석유 금수 조치가 아니라 매월 단 5%만 감산해도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장관은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아랍권의 금수 조치에 대해 반대했지만 이번에는 감산 조치를 내리자는 것이었다. 감산 조치이기 때문에 산유국들 상당수가 동참을 했다. 그러다보니 1배럴 당 2.9달러였던 원유가는 한 달 만에 12달러로 상승했다. 게다가 비OPEC 국가도 이틈에 석유 가격을 인상했다. 석유의 무기화를 성공한 것이다. 덕분에 중동 국가, 베네수엘라, 가봉 등 산유국은 호황기에 접어들었고, 1980년대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됐다.우리나라와 일본은 타격
반면 가장 타격을 입은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이었다. 우리나라는 중화학 공업 육성 초기였는데 자칫하면 중단할 뻔했다. 원유 도입 가격이 3배나 폭등하면서 무역적자액이 폭등했다. 이때 건설된 아파트는 엘리베ㅣ터 격층 정지 형태를 보였다. 여의도 광장아파트 등이 그러했는데 예컨대 4층에서 내리면 4층과 5층 사이 계단참 부분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4층으로 내려가거나 5층으로 올라가는 형태를 취했다. 그 이유는 석유 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의 상승에 따라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였다. 일본도 타격이 컸다. 다만 일본의 경제성장이 그 당시에는 엄청났고, 미국 등 주요 서방국가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컸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