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올해 들어 5조원 던져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증시 이탈이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팔자’ 행진에 외국인이 보유한 코스피 주식의 시가총액(이하 시총) 비중이 6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었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장 마지막 날인 11일 기준 코스피시장 전체 시총은 2091조원으로, 이 가운데 외국인 보유 주식 시총은 666조원이다. 시총을 기준으로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 비중은 31.86%다. 이는 2016년 2월 11일의 31.77% 이후 6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스피 외국인 시총 비중은 2020년 초 40%에 육박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와 개인 주식 투자 열풍 등에 2020년 말 36.50%, 2021년 말 33.55%로 감소했다. 이같은 외국인들의 매도세는 시총 상위종목 위주로 이루어졌다. 코스피시장 시총 1위 삼성전자가 1조 6천987억원로 가장 많았다. 아울러 지난해 말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해 상장된 LG에너지솔루션이 6천60억원, 현대차 3천888억원, LG화학 3천681억원, SK하이닉스 3천636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여러 악재 겹쳐
이처럼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발을 빼는 건 여러 악재가 겹친 결과라는 게 증권업계의 중론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에 따른 서방 국가의 러시아 제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예고 등 대외 여건이 좋지 않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통화 긴축 우려가 유동성 확보와 위험자산 회피 심리로 이어져 외국인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빌린 채무를 갚지 못하는 디폴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는 16일에 돌아오는 이자 상환일에 필요한 금액은 1.2억 달러다. 러시아 전체 외채는 국채가 84억 달러, 회사채를 포함하면 2621억 달러로 추산된다. 4월에는 20억 달러의 만기가 돌아온다.원화 약세도 영향
또한 한국이 수출과 에너지 등 대외 의존형 경제 구조인 데다,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 확대로 원화 가치가 하락한 점도 외국인 매도를 부추겼다. 외국인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 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만큼 원화값이 떨어지면 투자분에 대해 환차손을 입는다. 원화 약세는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달러당 1188원대이던 원화값은 지난 11일 달러당 1232원으로 3.6% 하락(환율은 상승)했다. 지난 8일에는 2020년 5월 29일 이후 최저인 달러당 1237원까지 밀렸다.약세 지속되는 증시, 반등 가능할까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던진 엄청난 물량은 개인 투자자가 받아내고 있다. 지난달 18일 이후 개인들은 국내 주식을 7조 7천816억원어치 매수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가 하락하자 반등을 기대하며 ‘저가 매수’에 나선 것이다. 외국인과 개인의 손바뀜이 가장 많았던 종목은 삼성전자(2조 8천897억원)다. SK하이닉스(6천781억원)와 LG화학(5천308억원) 등도 개인투자자가 쓸어담았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이같은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유는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매수세로 인해 개인 투자자들의 현금 확보도 힘들어졌다는 이유도 힘을 싣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자금 성격의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10일 63조 1천372억원으로, 연초 대비 8조원 넘게 감소했다. 금리 인상기를 맞아 ‘빚투’(빚내서 투자)도 주춤해졌다. 같은 날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올해 들어 2조원 가량 감소한 21조원대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결국 코스피가 반등하려면 외국인의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지정학적 이슈도 부담이지만, 미국의 긴축 사이클에 대한 방향이 정해질 때까진 외국인 수급 개선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