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제는 김유신 제사에서 기원???
강릉단오제는 언제부터 열렸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산신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그 산신제는 산신령이 된 김유신 장군을 기리기 위한 제사라는 것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 방향으로 1km 떨어진 기슭에는 각사성황사와 산신각이 있는데 성황당은 범일 국사를 모시고, 산신각은 김유신을 산신으로 받을어 제사를 지내왔다. 고려 왕건 시대 명주(강릉) 호족 김순식(훗날 왕순식으로 바꿈) 일화가 있는데 왕건이 후백제군을 제압한 왕순식에게 “내 꿈에 기이한 승려가 병사 3천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다음날 경이 도와줬으니 꿈이 들어맞았다”고 말하자 왕순식이 “제가 명주(강릉)에서 출발해 대현(대관령)으로 오는데 이상한 절이 있어 제사를 베풀어 기도했습니다. 임금께서 꿈꾸신 것은 반드시 이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왕순식이 제사를 베풀고 기도를 했다는 것은 바로 범일국사와 김유신 장군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강릉단오제의 역사가 1천년 이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허균의 기록에 따르면
강릉의 대표적 인물 중 한명인 홍길동전 저자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단오제에 대한 기록이 있다. 허균이 34세이던 1603년(선조 36) 여름, 당시 수안군수를 역임하고 모친과 함께 외가인 강릉 사천의 애일당에 내려와 약 4개월 간 머물렀을 때 강릉단오제를 보았다고 기록돼 있다. 명주 사람들(강릉 사람들)이 5월 길일을 택해 대관령 산신인 김유신 장군을 괫대와 꽃으로 맞이해 부사에 모신 다음 온갖 잡희를 베풀어 신을 즐겁게 해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신이 즐거우면 하루 종일 괫대가 쓰러지지 않고 그 해는 풍년이 들고 신이 화를 내면 이것이 쓰러져 그 해는 반드시 풍재나 한재가 있다고 말한 수노(首奴)의 이야기를 그대로 적고 있으며, 이 말을 듣고 자신도 이상하게 여겨 그 날 가서 보았더니 과연 괫대가 쓰러지지 않아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환호성을 지르고 경사롭게 여겨 서로 손뼉을 치며 춤을 추었다는 것이 허균의 기록이다. 그러다보니 강릉단오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그해 풍년을 기원하는 그런 축제인 셈이다.강릉단오제 취소되거나 축소된 사연
이런 강릉단오제가 2005년 한국에서 네 번째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축제가 됐다. 이에 국민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다. 그러나 강릉단오제가 축소되거나 취소된 적도 있었는데 2009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정국이기 때문에 불꽃놀이가 취소됐다. 2010년에는 천안함 사태,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 때문에 제례행사를 제외한 모든 행사가 취소됐다. 그리고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제례행사를 제외한 모든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돼야 했다. 한편, 개신교에서는 강릉단오제가 무속신앙에 기인했다고 해서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