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채무탕감 패키지 내놔
금융위원회가 지난 15일 발표한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크게 ▲자영업자‧소상공인 금융애로 완화 ▲주거 관련 금융부담 경감 ▲청년 등 재기지원을 위한 채무조정 강화 ▲서민‧저신용층 금융지원 보완 및 민생범죄 근절 등 4가지 부문에 전방위적으로 지원할 것임을 시사했다. 정부의 금융지원은 금리상승 여파로 취약차주와 변동금리를 이용한 차주들의 상환부담이 가중된 까닭이다. 금융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860조원으로, 주택담보대출 820조원, 전세대출 162조원, 신용대출 270조원, 기타(비주택부동산 담보대출, 예적금담보대출) 609조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2030세대의 부채가 508조원으로 전체 계층의 27%를 점유했다. 기업부채는 2355조원으로, 대기업·회사채 1025조원, 중소법인 730조원, 자영업자 600조원이다. 자영업자의 경우 다중채무, 저소득·저신용자 등 부실위험액이 전체의 9.2%인 82조원에 달한다. 미국이 물가상승을 우려해 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에 이어 한 번에 1.0%p 인상하는 '울트라 스텝'을 이달 실시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우리나라도 연말까지 대규모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미 부채 리스크가 큰 취약차주와 영끌·빚투족의 채무부담을 고려하면 정부가 뒷수습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가상자산 투자 실패까지 정부가 구제(?)
다만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주택을 비롯해 주식,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 실패까지 정부가 구제해 준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대표적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 중 연체 90일 이상 부실차주 대상 원금 60~90% 감면 ▲안심전환대출(변동금리 주담대의 장기·고정금리 전환) ▲청년층 투자 실패자 채무 30~50% 감면 및 은행권 프리워크아웃 등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비롯해 생활비가 부족한 취약계층에 한정해 핀셋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뿐만 아니라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만큼, 변동금리 주담대를 이용하는 차주에게 고정금리로 전환할 수 있는 정책을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투자 실패에 따른 책임까지 정부가 보장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파장이 일파만파다. 그동안 어려운 환경에도 성실히 빚을 갚아온 차주에게 역차별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빚을 내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어 우리 사회 전반에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투자자 A씨는 "금융시스템으로 채무를 흡수하자는 것인데 이는 신뢰를 훼손하는 반(反) 시장 정책"이라며 "가계부채의 절반이 주담대인데, 이를 취약차주로 볼 수 없다. 자산을 사서 이익이 나면 본인 것이고, 손실이 나면 국가가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투자자 B씨는 "생활비 목적으로 안심전환대출을 사용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 취약계층이기 때문에 이들에 국한해 재정을 투입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을 풀면 경기둔화, 인플레 지속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원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금융당국 진화 나서
이처럼 논란이 거세지자 18일 금융위원회는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을 열고 "원금을 탕감해주는 것이 아닌 금리 감면 차원"이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약층 채무조정은 가상자산 등에 빚투한 실패자를 위한 대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금리 상승 등 금융환경 변화로 취약계층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번 대책은 일부 청년층 뿐 아니라 대다수 빚을 성실하게 갚는 일반 국민과 취약층에 대한 종합대책이라는 것이다. 금융위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없도록 지원대상 및 지원내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대상자에 대해선 신용회복위원회·금융회사가 엄격한 소득·재산 조사를 실시해 지원 여부 및 지원수준을 결정(재산·소득이 충분한 경우 지원불가)하겠다고 전했다. 금융위는 "원금탕감 조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원되지 않으며, 대출만기를 연장하고 금리를 일부 낮춰주는 차원"이라며 "다른 지원 없이는 원금상환이 어려운 차주에 대해서만 천천히 낮은 금리로 원금을 전액 성실상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라고 밝혔다. 청년층에 대해서만 특별히 채무조정 지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청년층은 우리경제의 미래에 있어 역할이 중요한 만큼 금리감면 지원을 일부 확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청년층 내 금융채무불이행자가 확대된다면 취업상 제약까지 더해져 경제활동인구에서 탈락하는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이번 채무조정이 빚투, 영끌족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시 감면분은 해당 대출을 취급한 금융회사가 부담을 나누어 지게된다고 전했다. 김주현 위원장 역시 "지원 규모인 125조원이 모두 정부 예산은 아니다"라며 "채권 발행으로 조달하는 부분도 있고, 예산 지원 없이 대환으로 지원하는 부분도 있다"고 부연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