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소득·종부세 다 내린다
기획재정부는 매년 세법 개정 방향을 통상 '세법개정안'으로 발표했으나 올해는 윤석열 정부의 철학을 담아 개편 폭을 키운 것을 고려해 '세제개편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간·기업·시장 역동성과 자원 배분 효율성 제고, 세 부담 적정화·정상화에 초점을 맞춰 세제개편안을 설계했다고 밝혔다. 세금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기업을 비롯한 민간 경제주체가 조세원칙에 맞게 '소득에 맞는 세금'을 내며 경제활동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세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 종부세 등 주요 세금 부담을 모두 낮춰주는 방안을 택했다. 법인세 최고세율 하향·과세표준(과표) 구간 단순화, 종부세 다주택 중과 폐지·세율 인하·공제금액 상향, 근로소득세 과표 구간 상향, 상속·증여세 완화 등이 방안에 포함됐다. 정부는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4.3%를 밑돌지만 2015년 17.4%에서 2021년 22.1%(잠정)까지 급상승했다는 점을 들어 감세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감세에 초점을 둔 이번 세제개편안이 실현되면 13조1천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전년 대비 세수 증감을 계산하는 순액법 기준으로 세수는 2023년 6조4천억원, 2024년 7조3천억원이 각각 감소한다. 2025년 이후에는 세수 감소가 크지 않다. 향후 가장 많이 줄어드는 세목은 법인세로, 6조8천억원 감소가 예상된다. 소득세는 2조5천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법인·소득세 감소분이 전체 세수 감소분의 71%를 차지하는 셈이다. 증권거래세는 1조9천억원, 종부세는 1조7천억원 각각 감소할 전망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으로 예상되는 13조1천억원의 세수 감소는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세제개편안의 33조9천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법인·소득세율을 나란히 인하하는 등 대대적 감세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을 내놨다.재정 건전성 기조와 충돌 논란
법인세 등 기업 부담을 상당 폭 줄여준 이번 세제개편안은 중장기적으로는 기업 투자·고용 증가에 일정 정도 효과가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제개편안에 대해 글로벌 기준과 추세에 부합하지 않는 법인세를 개편하는 것은 글로벌 조세 경쟁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고 투자나 선순환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재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세금을 줄여준다고 해서 바로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한 대규모 세수 감소는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윤석열 정부가 특히 강조해온 '재정건전성 강화'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건전재정 기조와 거꾸로 가고 있으며, 재정을 많이 썼던 다른 국가들의 과세 강화 추세와도 반대로 가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세수가 예상보다 더 줄어들 수 있는 데다 경기 수축 국면에서 지출을 줄이기는 굉장히 어렵기에 결국 재정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다만 추경호 부총리는 투자 확대와 성장 기반 확충이 시간을 두고 세수 확대로 나타날 것이고, 이것이 재정건전성에 기여할 것"이라며 '선순환 효과'를 기대했다. 아울러 추 부총리는 또 "13조원 세수 감소 중 내년에 나타나는 것은 6조원 정도인데, 이는 통상적으로 세수가 (매년) 확대되는 규모를 고려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서민·중산층 감세 혜택, 상대적으로 낮아
감세를 통한 경제 활성화 효과를 고려한다고 해도, 서민·중산층에 돌아가는 감세 혜택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분석한 세수 감소분 13조1천억원에 대해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법인이 6조5천억원이며 그중에서도 대기업이 4조1천억원으로 중소·중견기업 2조4천억원보다 많다. 개인의 세수 감소 효과는 3조4천억원으로 서민·중산층이 2조2천억원, 고소득층이 1조2천억원이다. 기업과 고소득층의 세수 감소 효과가 총 7조7천억원으로 서민·중산층과 중소·중견기업 4조6천억원보다 많은 것이다. 이는 기업과 고소득층에 유리한 법인세와 종부세 등의 개편 폭에 비해 서민·중산층도 혜택을 볼 수 있는 근로소득세 등의 개편 폭은 크지 않은 영향으로 보인다. 정부는 서민·중산층 지원을 위해 각종 근로자 세부담 감소 정책을 내놨다는 입장이지만, 이 중 가장 비중이 큰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조정의 세수 감소 효과도 1조6천억원으로 기업 세수 감소 혜택의 25% 수준이다. 근로·자녀장려금 확대는 7천억원, 교육비·주거비·기부금 공제 확대 등은 6천억원,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는 5천억원의 세수 감소 효과가 있으나 이를 모두 고려해도 기업이 보는 감세 혜택보다 적다. 때문에 현재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상황인데 최근 15년간 유지해온 근로소득세 과표를 소폭으로 조정하고 세율도 유지한 것은 서민·중산층에 대한 배려 측면에서 조금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추 부총리는 "기업이 투자·일자리 창출의 중심인 만큼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했고, 중산·서민층이 생계비 여력을 확보하도록 세 부담을 줄인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양쪽 다 균형 있게 하려 했고 기업은 나름의 중요한 역할이 있어 기업 활성화에 좀 더 무게를 뒀다"고 말했다.거대 야당, 민주당 ‘반대일세’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정부의 '2022년 세제개편안'을 '부자감세'로 규정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국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전체적인 과세 기준이 낮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재벌과 대기업 그리고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윤석열 정부는 재벌과 초특급 부자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정부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은 최근 경제위기 상황을 거론하며 "이때 정부가 해야 될 정책은 무엇일까. 당연히 서민들에 대한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러려면 재정을 확충해야 하는데 정부는 정반대로 긴축재정을 하겠다고 하고, 대기업과 부자들의 감세를 하겠다고 한다. 그 근거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글로벌이 어느나라를 얘기하는 글로벌인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일정대로라면 9월 2일 이전 국회에 국세기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부가가치세법, 개별소비세법, 주세법, 농어촌특별세법, 국세징수법, 조세특례제한법,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조세범처벌절차법, 종합부동산세법, 인지세법, 교육세법, 관세법, 관세사법, 수출용 원재료에 대한 관세등 환급에 관한 특례법 등 총 18개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험로가 예고되고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