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3.50% 기준금리 동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동결의 배경으론 경기 침체 우려가 꼽혔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가 지난해 4분기부터 역성장한 데다 수출·소비 등 경기 지표도 갈수록 나빠지는 만큼, 추가 금리 인상으로 실물 경제를 더 위축시키기보다 일단 그간 인상의 물가 안정 효과나 경기 타격 정도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금통위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지난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췄고, 같은 해 5월 추가로 0.25%포인트 낮춰 2달 만에 1.25%에서 0.50%로 금리를 빠르게 낮췄다. 이후 9번의 기준금리 동결을 거쳐 지난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올리는 통화정책 정상화에 들어간 바 있다. 이후 올해 1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0.25%포인트씩 여덟 차례, 0.50%포인트 두 차례 올려 모두 3.0%포인트를 높였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랠리를 멈춘 것은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서다.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분기 대비)은 수출 부진 등에 이미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로 돌아섰고, 심지어 올해 1분기까지 역성장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상품수지도 반도체 수출 급감 등의 이유로 3개월 연속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달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335억4900만 달러)도 전년 동월 대비 2.3% 줄어 말일까지 이 추세를 이어간다면 이번 달까지 5개월 연속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수출 감소, 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이번 달 소비자심리지수(CCSI·90.2)도 전월(90.7) 대비 0.5포인트 떨어졌다. 부진한 수출에 이어 성장을 이끌 민간 소비까지 움츠러들었다는 의미이다. 수출과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한은은 이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지난해 11월 제시한 1.7%에서 1.6%로 소폭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1%대 경제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 코로나19로 마이너스 성장했던 지난 2020년(-0.7%),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지난 2009년(0.8%)을 제외하곤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물가 흐름이 한은의 예상권에 들어왔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이다. 이전까지 금리를 인상했던 이유인 인플레이션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돼 금리 인상의 파급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의미이다.상승하는 ‘환율’...뇌관되나
다만 이날 동결 결정으로 기준금리가 최종 3.50% 수준에서 정점을 찍고 멈출지는 불확실하다. 공공요금 인상 여파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떨어지지 않거나, 미국 간의 금리차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경우 한은은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수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한 전날 5대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95~6.42%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 금통위가 지난달 13일 4.78~7.41% 보다 금리 상단이 100bp(1bp=0.01%포인트)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시중은행의 시장금리는 기준금리와는 큰 인과관계 없이 움직여 왔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과는 무관하게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금리 인하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해왔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는 상관없이 지금까지 꾸준히 내려왔다”며 “심지어 이번에는 동결이기 때문에 시장금리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보는 관점은 다르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여지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환율 변동’이 대출금리가 오르는 또 다른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환율변동이 우리나라 물가나 통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며 “1300원대 중후반으로 환율이 상승한다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려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고, 이 부분이 앞으로 시장금리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내다봤다.대출금리 더 오를수도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두 차례나 1300원대를 돌파했다. 미국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자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한 자금을 빼가며 원화 약세가 이어졌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중앙은행의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단행되면 1300원대 중반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22일(현지시간) 공개된 2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참석자 중 대부분이 기준금리를 현재보다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낮아지고 있는 징후가 있지만 더 많은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두 차례에 걸쳐 0.5%포인트 인상되거나 혹은 세 차례에 걸쳐 0.75%포인트 인상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럴 경우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한은이 한 차례 더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아 3.75%에 이르더라도 1.5%포인트~1.7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이는 역대 최대폭이다. 금리는 돈의 가치이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은,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또 환율 상승은 물가를 밀어올리는 요소다. 통화정책의 가장 큰 목표가 물가안정임을 감안하면, 추가 금리 인상이 이에 맞춰 이뤄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시장금리는 이달 들어 상승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다.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3년 만기 은행채(AAA) 금리는 지난 22일 4.113%를 기록했다. 지난 3일 3.663%까지 떨어졌던 것이 20여일만에 0.45%포인트나 올랐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환율에 더해 공공요금까지 줄인상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가 3.75%뿐 아니라 4%까지 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며 “고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대출금리도 밀어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