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철도차량 부족 현상 본격화...코레일 ‘재생 베어링’ 내부결함 문제제기도
코레일, 제작협의서 특정 부품 사용 강요도...거부 시 차적편입 언급하며 압박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문제된 코레일 ‘갑질‘...국토부 철도물류산업 육성계획 차질 우려도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제2차 철도 물류 산업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주력품목 운송비용‧시간 경쟁력 제고, 철도 물류 산업 전문화‧다변화 추진, 효율적이고 안전한 인프라 구축, 미래 대응형 기술개발‧도약기반 마련 등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화물 철도 차량이 제작 과정의 문제로 계획을 뒷받침하지 못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파이낸셜리뷰는 화물 철도 차량의 제작 과정을 추적하며 문제점을 따져본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리뷰=이창원 기자] 철도 물류 산업 육성계획은 ‘철도 물류 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하는 법정계획이다. 이번에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제2차 철도 물류 산업 육성계획’에서는 화물 철도 차량 확보, 노후화차 적기교체 및 물류 활성화 도모, 신규화차 제작 활성화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번 계획이 현재 상황에서 현실화 될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화물을 실어 나를 철도 차량 부족이 심각하다.”
철도 수송의 가장 큰 비중(39%)을 차지하는 시멘트 화차의 경우(2022년 11월 기준) 코레일과 민간 기업이 각각 602량, 1524량을 보유 중이다. 민간 기업이 보유한 시멘트 화차 중 432량은 지난해 수명(내구연한 30년)이 만료됐고, 올해에도 555량이 내구연한 만료를 앞두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민간 기업의 시멘트 화차는 537량밖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에 코레일은 지난달 11일 한국시멘트협회, 6개 시멘트사와 간담회를 갖고 수도권 3개 열차의 운행 횟수를 주 16회에서 21회로 확대키로 했다. 또한 내구연한이 만료된 차량 중 정밀안전진단을 통해 올해 안에 시멘트 화차 345량 투입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품 수급 등 문제가 변수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0일 발생한 시멘트 화차 탈선 사고의 이유로 베어링 내부결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이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시멘트 화차 부족 문제는 더욱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 다만, 국토교통부 입장에서는 전수조사에 들어갈 경우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할 때 철도 물류 산업 육성계획 진행에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고심이 깊어지는 부분이다.
철도 관계자는 “(이번 탈선 사고는)베어링 내부결함으로 인해 차축이 절단된 사고”라며 “탈선 차량에 장착된 베어링은 신품이 아닌 코레일이 자체적으로 재생한 베어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레일이 과거에도 신품이 아닌 재생 제품을 사용해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있었는데 유야무야 넘어갔다”며 “이번 기회에 재생 베어링의 안전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시멘트 화차는 코레일이 지난 1월에 정비한 차량으로 알려졌다.
시멘트 화차에 이어 철도 수송의 35%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컨테이너 화차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기준 코레일이 1902량, 민간 기업이 451량을 보유 중이다. 컨테이너 화차 부족으로 올해 1월 1일부터 2월 11일까지 총 115회의 계획된 운행을 하지 못했다.
위험물 탱크차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A사에서 소유한 위험물 탱크차는 100량 중 41량만 운행 중이다. 27량은 폐차 또는 폐차 대기 중이고, 8량은 코레일이 검수 중이다. 나머지 24량은 코레일의 검수를 대기 중이고, 대기 기간은 평균 6개월이다. 검수 대기 중인 차량 중 1년 이상 대기 중인 차량도 여러 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경정비의 경우 1~2일, 중정비의 경우 5일이 소요되는 만큼 코레일이 사실상 위험물 탱크차 정비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아울러 검수 대기 차량은 정비 차고가 아닌 일반역에 방치돼 있고, 장기간 미운행으로 내부 부식이 진행됨으로써 차량 수명이 단축되고 위험물이 누출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이에 A사는 현재 운행 중인 41량의 운행을 주 5일에서 7일로 늘리며 대처하고 있지만, 제한된 차량을 매일 운행함에 따라 정비 주기가 일찍 도래하고 작업인력의 피로도도 급속하게 높아져 안전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A사 관계자는 “코레일에 정비 대기 차량을 신속하게 정비하고 신규 제작이 완료된 30량을 조속히 차적편입(사유 차량의 관리 운용과 보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코레일 차적에 편입) 해주지 않을 경우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공문을 수차례 발송했지만 코레일은 차량정비도 차적편입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신차 공급 발목 잡는 화물 철도 차량 제작 협의
코레일과 민간 기업들이 신차 제작에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 코레일은 컨테이너 화차 251량을 발주해 제작 중이고, 5개 시멘트사는 1200량 제작을 목표로 1차분 100량을 발주해 제작 중이며 지난해 말 2차분 400량을 추가 발주한 상태다.
위험물 탱크차는 이미 2021년에 구형차량보다 10톤(ton)을 더 싣고 다닐 수 있는 최신사양으로 20량이 제작돼 운행하고 있고, 동일 사양으로 30량이 신규 제작돼 코레일 차적편입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추가로 20량이 제작될 예정이다.
철도 물류 업계 관계자는 코레일 제작 협의가 신차 공급을 더디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의 형식승인과 안전관리체계승인은 법적 절차로 정해진 요건을 충족하면 승인받을 수 있지만, 코레일과 진행하는 제작 협의는 코레일의 요구조건 수용 여부가 주요 안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화물 철도 차량은 발주자가 코레일과 할인율 등 수송조건을 합의한 후 차량 제작사를 선정해 차량을 제작하고, 철도안전법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철도 차량 형식승인, 제작자 승인, 완성검사를 받는다. 이후 코레일이 차적편입을 하면 운행이 가능하다. 차량 제작은 소유자가 하고, 운행은 철도운영자인 코레일이 맡는 형태다.
코레일이 제작 협의를 하는 근거는 국토교통부 고시 ‘철도안전관리체계 기술기준’ 12.8.5호다. 12.8.5호에서는 철도 차량 발주자와 운영자가 다른 경우 발주자는 차량설계, 제작, 완성검사, 시운전 시 운영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2.8.5호는 수서고속철도 운행 과정에서 지난 2015년 12월 30일에 신설된 조항이다. 수서고속철도 운행은 에스알, 차량정비 등 유지관리는 코레일로 역할이 분리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설됐다.
때문에 민간 기업들은 민간 화물 철도 차량의 제작, 유지관리 등에 관여하고 있지 않은 코레일이 해당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제작 협의 과정에서 특정 부품 사용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할 시 차적편입을 해주지 않겠다며 발주자와 제작사를 압박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갑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체 시 제작업체 수십억원 피해 불가피
앞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코레일의 ‘갑질’ 사실은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코레일이 한국시멘트협회가 진행한 시멘트 화차 100량 제작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시점인 2021년 9월 29일에 한국시멘트협회에 공문을 보내 법적 권한도 없는 도면승인을 요구하고 특정 부품 사용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이후 코레일은 도면승인 권한이 없음을 인정하고, 공문을 제공한 정모 일반 차량 처장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다. 다만 해당 사건과 관련해 B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본안 소송이 각하된 지난해 5월 9일이 돼 서야 코레일은 한국시멘트협회에 공문을 통해 설계 승인, 주요 장치 반영은 운영자 의견으로 권고한다고 물러났다.
이로 인해 시멘트 화차 제작은 약 8개월 늦춰졌고, 발주자와 차량 제작자는 코레일이 차적편입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차량 제작사는 납기 지연 시 수십억원의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고, 이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회사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토교통부가 계획하고 있는 신차 공급은 차질을 빚게 되고, 새로운 제작사가 맡게 되더라도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 형식승인을 받는 데에만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돼 계획 현실화는 사실상 불가능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