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미일 반도체 전쟁
[역사속 경제리뷰] 미일 반도체 전쟁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8.22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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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미일 반도체 전쟁은 1980년대 시작된 전쟁으로 10여년의 전쟁 끝에 승자는 삼성전자였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을 위협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일본에 대한 반도체 산업 규제가 시작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오늘날 일본 반도체 산업이 크게 위축된 이유가 바로 미일 반도체 전쟁 때문이다.

패망 이후 일본은

일본이 1945년 패망 이후 1950년 6.25 전쟁을 계기로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역시 일본의 산업을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일본 전자산업에 대해 각종 기술 등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일본으로 전수된 반도체 기술은 1990년대까지 일본 전자업계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하는 핵심이 됐다.

일본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반도체에 막대한 투자와 연구를 하게 했고, 미국의 반도체 회사들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초중반 세계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본 반도체 산업이 미국 반도체 기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특히 미국의 특허 개방은 미국에서 일본으로의 기술유출을 더욱 확산하게 만들었다.

1985년 당시 일본 저가 공세는 미국 시장을 잠식하게 됐다. 이로 인해 미국 내 메모리 가격은 70% 폭락하게 됐다. 1984년 초 3달러였던 64kb 램 가격이 75센트로 급락하게 된 것이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끊임없이 투자를 하면서 반도체 품질을 향상시킨 반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품질마저 일본 반도체에 뒤쳐지게 됐다.

이에 미국 내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했다. 따라서 인텔은 1984년 D램 산업을 포기하고 중앙처리장치인 CPU로 사업을 전환했고, RCA는 1986년 폐업했다.

미국의 반격

그러자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1985년 6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미무역대표부에 통상법 301조 위반혐의로 일본정부를 상대로 청원서를 제출했다. D램 업체인 마이크론도 일본 NEC, 히티치, 미쓰비시, 도시바 등을 반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특히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985년 뉴욕 플라지 호텔에서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와 서방 5개국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의 고평가와 미국 달러 저평가가 이뤄지도록 하는 플라자합의를 체결했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의 반도체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1986년 일본 반도체 업체는 미국에 생산 원가를 공개해야 했고, 일본 내 미국 반도체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높이기로 한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했다.

1987년 일본 정부가 미일 반도체 협정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통항법 301조를 통해 무역보복을 실시했고, 일본산 TV에 100% 보복관세 조치를 시행했다. 미일 반도체 협정은 1996년일본 내 미국산 반도체 점유율 20.2% 실현으로 종결됐다.

일본 반도체 회생 불능 상태로

이때부터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회생 불능 사태에 빠지게 됐다. 그때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메모리 산업에서 비메모리 산업으로 주력 업종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즉,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더 이상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게 됐고, 미국 역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대한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한 반면 삼성전자는 과감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997년 반도체 매출 7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가 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비메모리 분야로 진출하고, 일본 반도체 산업은 재기의 발판을 완전히 잃어버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자리를 채워가면서 현재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1위와 3위로 등극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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