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링컨 노예해방선언
[역사속 경제리뷰] 링컨 노예해방선언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8.29 13: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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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링컨 노예해방선언은 남북전쟁 과정 속에서 1862년 9월 이뤄졌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과정 속에서 갑작스럽게 노예해방선언을 했다. 이 노예해방선언은 ‘구속력’을 갖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주(州)에서 실행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남부를 상대로 한 선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흑인 지원 얻어낸 것도 있지만

남북전쟁 중간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노예해방선언을 하면서 북군은 자유-해방전쟁의 병사가 됐고, 흑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었다. 원래 링컨 대통령은 유예기간을 두고 적절한 금전적 보상을 거쳐 노예인을 자유인 신분으로 전환하는 것을 구상했었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급진적인 내용을 담아 선언했다. 노예해방선언 내용은 남부 진영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듬해인 1월 1일(1863년) 모든 주의 노예해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해당 명령은 법적 근거가 없다. 남부주에서 링컨 대통령의 선언은 이행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흑인 병사가 늘어났다. 대략 2만 5천~7만 5천명의 흑인이 북군 군사로 입대했다. 남북전쟁 끝날 무렵 북군 흑인은 약 20만명이 됐다.

영국·프랑스 개입 차단

또 다른 목적은 바로 영국과 프랑스 개입의 차단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시 남부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막대한 면화의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 면화를 수입할 수 있었지만 남부에서의 면화 수입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영국과 프랑스는 암묵적으로 남부를 지지했다. 일각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암묵적 지지를 넘어 남북전쟁에 적극 개입할 수도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과 프랑스 입장에서는 미국이 남과 북으로 찢어지게 된다면 자신들과의 경쟁에서 미국은 도태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도 한 몫 했다. 즉, 경제적 이유도 있었고, 정치적 이유도 있었기 때문에 남부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남북전쟁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을 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개입을 사전에 차단해버렸다. 왜냐하면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노예해방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더 이상 남북전쟁에 개입할 여지가 없게 만들어버렸다. 설사 남북전쟁에 개입을 하더라도 북부 편을 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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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남학생 2024-10-11 11:19:51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