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유 대량 생산은 남북전쟁 시기부터
연유의 대량 생산과 상업화는 미국 사업가 게일 보든(Gail Borden)이다. 1850년 식품회사를 운영하면서 소고기를ㄹ 가공해 비스킷을 만들어 팔았는데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소고기를 건조시키는 기술을 응용해 우유를 농축시키는 기술도 개발했고, 1856년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연유를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았다. 치즈나 버터도 있는데 신선한 우유를 농축시켜 장기간 보관하면서 먹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북군이 연유에 주목하게 된 것은 섬터(Sumter) 요새 구출 작전 때문이다. 섬터는 미국 남동부 해안 요새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州)애 속해 있었고, 남부연맹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섬터요새 자체는 북군이 차지하고 있었다. 즉, 남부연맹 한 가운데 북군 요새가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남부연맹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군의 포격에 의해 항복을 했지만 해상봉쇄에도 불구하고 북군이 장기간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연유’ 때문이다. 남부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북군은 연유를 먹으면서 영양 보충을 했었던 것이다. 북군 연방정부는 연유의 효용성을 이때부터 알기 시작하면서 게일 보든과 계약을 맺고 연유 생산에 들어갔다.남부 연맹 군인들이 부러워했던
북부 연방정부에서 연유가 보급되면서 북군의 영양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남부 연맹 군인들은 북부 군인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영양이 풍부한 연유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남군은 북군의 보급품을 탈취해 연유를 먹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부 연방정부의 승리로 남북전쟁이 끝나자 사업가들은 연유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졌다. 왜냐하면 시민들 입장에서는 치즈나 버터를 먹을 수 있는데 연유를 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시 주목을 받는 시기가 있었다.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역시 우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전쟁터에서 연유가 그 대체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알 카포네에 의해 연유는 몰락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연유 산업은 붕괴된다. 그 이유는 미국 마피아 조직 알 카포네 때문이다. 알 카포네가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밀주 제조와 유통으로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금주법이 해제되면서 더 이상 밀주 제조와 유통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우유 배달 사업이었다. 밀주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에서 ‘차량 운송’과 ‘냉장 시스템’ 등을 갖추게 되면서 알 카포네는 우유를 차량으로 운송하고 냉장 시스템을 통해 유통을 하게 되면서 큰 돈을 벌게 됐고, 다른 사업가들도 우유 유통 사업에 뛰어들면서 더 이상 연유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이 떨어지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