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9월 5일 평안감사 박규수 휘하 조선군 부대에 의해 불태워지고 선원들이 살해된 사건이다.
제너럴 셔먼호는 미국인 선주이지만 사용자는 영국회사였다. 선주는 미국인 프레스톤이었고, 사용자는 영무역회사인 메도우즈 상사였다. 당시 메도우즈 상사는 조선과 무역을 시도하기 위해 미국 배인 제너럴 셔면호와 용선 계약을 맺은 것이다. 여기에 토마스라는 개신교 선교사도 탑선했다.
무기 밀매???
영국무역회사와 미국 국적 선박이 개항 목적으로 조선을 방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무기 밀매를 위해 조선을 방문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은 쇄국정책을 하면서도 서구 유럽의 신무기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그 이유는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참패를 당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영국무역회사는 조선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은 공식적으로 쇄국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무기 밀매 방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 도착했을 때 조선 사람들이 물과 식량 등을 공급하면서 조용히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제너럴 셔면호는 대동강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선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결국 제너럴 셔먼호는 약탈을 감행했다. 이에 평안감사 박규수는 늦지 않았으니 물러가라면서 중군 이현익을 보냈지만 이현익을 납치했다.
중군 이현익이 납치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군졸들과 백성들이 노하면서 배를 포위하고 결국 불태웠고, 선원을 모두 죽였다.
신미양요, 5년 후 벌어진 이유
제너럴 셔면호 사건 5년이 지난 1871년 신미양요가 발발했다. 5년이나 지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미국 국적 선박이지만 영국무역회사 업무로 조선땅을 밟았다는 것이다.
또한 개항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항을 목적으로 했다면 평안감사 박규수에게 개항을 목적으로 왔다고 직접 말을 했을텐데 방문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해적질을 했다는 점이 미국이 대놓고 항의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 상황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북전쟁이 끝난지 1년도 안된 시기였고, 미국에서 조선에 대한 관심이 당시에는 크게 없었다.
흥선대원군은 제너럴 셔면호를 인양해서 증기기관을 복제하려고 했다. 승정원일기 등에 따르면 시범운행이 매우 성공적이라고 기록돼 있다. 화포 시범 사격도 성공적이었고, 2척을 만들어 강화도에 3척을 배치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증기선을 복제하려고 했던 이유는 쇄국정책 당시에도 증기선을 만들거나 구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 입장에서 증기선 복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마침 제너럴 셔먼호가 침몰되면서 그 배를 건져서 증기기관을 복원한 것이다.
다만 3척의 증기선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이후 기록이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 석탄이 채굴되지 못했기 때문에 별다른 효용성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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