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HD현대오일뱅크의 페놀 폐수 처리를 놓고 정부와 사측이 연일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폐수 배출에 해당한다는 정부‧검찰의 입장과 공업용수 재활용이라는 HD현대오일뱅크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해 HD현대오일뱅크가 기준치 이상의 페놀이 든 공업용수를 불법으로 배출했다며 150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올해 상반기 HD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2951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검찰 역시도 물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 법인과 전 대표이사 등 7명을 기소했다. HD현대오일뱅크가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자회사 등으로 폐수를 불법 배출했다는 것이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HD현대오일뱅크는 페놀 폐수 33만톤을 자회사 HD현대오씨아이 공장으로, 폐수 113만톤을 자회사 HD현대케미칼 공장으로 배출했으며 폐수 130만톤을 HD현대오일뱅크 공장 내 가스세정시설 굴뚝을 통해 대기로 증발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과 환경부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 이러한 폐수처리가 ‘폐수 불법배출’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지만, 사측은 ‘공업용수 재활용’에 해당한다며 반박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당시 가뭄으로 공업용수를 정상적으로 공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폐수를 재활용한 것이라며, 해당 폐수가 불순물을 제거한 재활용수로써 환경에 어떠한 훼손이나 위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가 ‘킬러규제 혁파’ 차원에서 기업간 공업용수 재이용을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현대오일뱅크 사례의 경우 과징금 부과는 조금 엄격했던 게 아닌가 싶다”라면서도 “공업용수의 재이용 허용 관련 법개정 시 소급 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부칙을 마련할 예정”이라 말했다.
요약하면 HD현대오일뱅크의 폐수 처리 방식은 앞으로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지만, 이미 과징금을 부과받은 HD현대오일뱅크에 대한 처분은 번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HD현대오일뱅크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정부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페놀 폐수 문제와 관련해 태안‧당진‧서산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환경단체 등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지자체나 환경단체 등에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1991년 낙동강 일대에서 터진 ‘페놀 유출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경상북도 구미공업단지 내 두산전자에서 페놀 원액 조장탱크와 페놀수지 생산라인의 연결 파이프가 파열돼 페놀이 낙동강으로 다량 유출된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2020년 개봉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이름의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재조명된 바 있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지만 당시 취수장에서는 염소를 다량 투입하는 등 임시방편에 나섰고, 페놀이 염소와 결합해 독소를 생성하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사태는 거침없이 악화됐다.
두산에 대한 불매운동 등이 일고 사회적 공분이 일자, 뒤늦게 당국이 조사에 나섰고 두산전자가 페놀이 다량 함유된 폐수 300여톤 이상을 무단으로 방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시적으로 두산전자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영업이 재개됐고 또다시 페놀원액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지금의 환경부에 해당하는 환경처 장차관이 일제히 경질됐다. 유관 공무원 및 두산전자 관계자들도 일제히 구속됐다.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환경 10대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