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미국 대륙횡단철도 그리고 중국인
[역사속 경제리뷰] 미국 대륙횡단철도 그리고 중국인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9.13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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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미국 대륙횡단철도는 1863년부터 1869년까지 6년 동안 동부의 철도망을 서쪽으로 연결하면서 건설된 2천826km의 철도 노선을 말한다. 미국이 남북전쟁 당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동쪽과 서쪽의 수송망 연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철도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재원은 연방정부의 보조금과 철도 회사가 발행한 채권 등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철도 회사가 센트럴 퍼시픽 철도(Central pacific Railroad)와 유니언 퍼시픽(Union pacific Railroad)였다. 다만 유니언 퍼시픽은 센트럴 퍼시픽에 1870년 흡수 합병됐다.
두 회사가 경쟁적으로 건설에 나섰는데 센트럴 퍼시픽은 캘리포니아에서 출발을 해서 1천110km를 완공하는 것이 목표였고, 유니언 퍼시픽은 동쪽에서 출발해서 서쪽으로 1천746km를 완공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1869년 5월 10일 유타 주 프로몬트리에서 양 철도가 만나게 되면서 드디어 대륙횡단철도가 완공됐다.

막대한 이권이 개입

당시에는 막대한 이권이 개입이 됐다. 그 이유는 미국 정부가 철도 양옆으로 마일 단위의 땅을 공짜로 나눠주는 법안을 가결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철도가 놓이는 그 땅이 원래 미국 원주민(흔히 인디언)이 살던 땅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인디언자치구역으로 쫓아내고, 철도를 깔고, 철도회사에게 땅을 나눠준 것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로비스트가 활동을 하면서 오늘날 로비스트의 기원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대륙횡단철도에는 수많은 이권이 개입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대한 보조금과 이권으로 철도 공사가 완공됐을 때 벼락부자가 속출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우후죽순 철도 회사가 생겨났다. 투자자들에게는 철도회사는 엘도라도와 같은 존재였다. 청나라 말기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부자였던 청나라 상인 오병감의 양자로 8년간 일했던 머레이 포보스가 미국으로 건너가 철도회사에 투자를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철도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

철도 공사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거리가 바로 노동자들이었다. 유니언 퍼시픽의 경우 남북전쟁이 끝나자마자 실업자가 된 군인들이 대거 철도 노동자로 기용됐다. 하지만 센트럴 퍼시픽은 상황이 달랐다. 마침 캘리포니아 지역에 이주해있던 수많은 중국인들을 센트럴 퍼시픽은 주목을 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을 철도 노동자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에라 네바다 산맥 건설현장에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투입됐고, 그만큼 중국인 희생이 컸다. 당시 중국인 노동자를 센트럴 퍼시픽이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철도 공사 현장의 업무 강도가 높아 백인 노동자들이 외면을 했다. 하지만 중국인 노동자는 아편전쟁 등을 피해서 이주를 해왔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이 뛰어났다. 너무나 많은 중국인들이 희생이 되자 센트럴 퍼시픽 철도 회사의 초대 회장 릴런드 스탠퍼드는 스탠퍼드 대학교를 설립하고, 중국인들을 학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탠퍼드 대학이 지금까지도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다만 중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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