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차는 영국으로부터
1960년 소비의 시대 맞이해
유아차가 젊은 엄마들의 필수품이 된 것은 1960년대 들어와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영국은 그야말로 황폐화되면서 경제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이 상승하면서 덩달아 중산층 가정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 주부들은 쇼핑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아차는 빠르게 필수템이 됐다. 또한 런던 리젠트 공원을 유아차를 끌고 여유롭게 거니는 모습이 당시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로망이었다. 이에 젊은 엄마들에게 유아차는 ‘육아의 자유’와 함께 ‘과시욕’이 투영된 상품이었다.왜 유모차였는가
유아차를 과거 유모차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넘어온 ‘단어’였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유아차가 일본에도 전파가 됐는데 워낙 고가의 제품이다보니 귀족들이 애용을 했다. 그러면서 귀족들 사이에서 유아차는 ‘유모’(乳母 : 젖어미)가 끄는 수레로 생각을 했다. 일본 귀족들에게는 갓난아기에게 그 어머니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길러 주는 여자인 유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모가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모가 끄는 수레라고 해서 ‘유모차’라고 물렀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파되면서 ‘유아차’를 ‘유모차’라고 부르게 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왔다. 하지만 ‘유모차’라는 단어에서 ‘어미 모(母)’가 들어가면서 그에 따라 여성이 육아를 독박 담당하는 것으로 비쳐지면서 양성 평등에 위배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되면서 ‘유모차’ 대신 ‘유아차’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