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제한구역으로
1기 신도시 계획 발표
그런데 1989년 4월 27일 노태우 정권이 일산과 함께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분당신도시에 10만가구 약 39만명 수용을 목표로 잡았다. 이에 1991년 10월부터 1996년 3월까지 약 5년간 차례대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입주가 이뤄졌다. 노태우 정권이 분당신도시 개발을 발표한 이유는 ‘한국형 신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공기업인 오늘날 LH의 전신인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분당신도시에 본사를 이전했다. 당시 모델하우스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됐을 때 하루에 8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왜냐하면 단 나흘만 모델하우스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대로 분당 지역 땅값이 성남 구시가지 땅값보다 저렴했지만 분당신도시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부동산 투기꾼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에 떴다방이 생기기도 했고, 복부인이라는 말이 이때에 나타나기도 했다. 투기꾼들이 엄청나게 몰리면서 하루가 지나면 땅값이 치솟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이런 이유로 당시 분당 지역 땅값이 가장 싼 때는 ‘바로 오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땅값이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았다.시승격 문제
원래 분당신도시는 성남시에서 분리해서 독자적인 기초자치단체가 될 예정이었다. 다만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도농통합으로 상징되는 행정구역 통합 기조에 따라 결국 백지화됐다. 또한 1990년대 초반에 분당신도시 주민들이 분당 지역에 서울 전화(02) 편입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지만 정부와 성남시가 거절을 하면서 무산됐다. 무엇보다 분당을 시로 승격을 하게 되면 다른 신도시 역시 시로 승격을 해야 하는 고민을 안을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분당에 산다”는 말 한 마디가 갖는 브랜드 가치가 있다고 분당 주민들은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