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고려인삼
[역사속 경제리뷰] 고려인삼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2.01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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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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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고려인삼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토종인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삼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재배를 하고 있지만 ‘고려인삼’은 예부터 그 효능을 인정받았고, 현재도 인정을 받고 있다.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재배하는 인삼이라고 해서 ‘고려인삼’이라는 말이 나왔고, 오늘날 Korea라는 말의 어원도 고려인삼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다.

예부터 인삼이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 인삼은 옛날부터 산출됐다. 이미 삼황오제시대부터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취급했고, 진시황제가 불로초로 취급하면서 서복이 한반도에 건너오게 된 것도 인삼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시절에는 ‘신라삼(나삼)’으로 취급했으며, 나삼이 당나라나 왜에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최치원은 생일에 인삼을 상관에 바치기도 했다고 계원필경에 기록돼 있다. 오늘날 고려인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고려시대 당시 인공재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즉, 고려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삼을 캐기 위해서는 심마니가 온 산을 뒤져야 했지만 고려시대부터 삼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게 됐다. 고려인삼은 천만금을 줘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귀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한반도를 거쳐 의학서적을 받았기 때문에 고려인삼은 만병통치약으로 취급했다. 오죽하면 인삼을 먹고 병을 고쳤지만 인삼값을 갚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일본에 왔던 유럽인들도 유럽에 고려인삼을 전파하면서 유럽에서 고려인삼도 알아줬다.

인삼대왕고은이란

일본이 에도시대 접어들면서 조선으로부터 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인삼대왕고은’이라는 순도 80%의 은괴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은 재정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화폐에 은의 함량을 줄였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은의 함량을 80%로 유지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은의 함량을 80%로 유지하는 ‘인삼대왕고은’을 주조했다. 이는 고려인삼 결제용으로 만들어졌지만 나중에 가서 국제무역을 교류할 때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도 인삼 재배를 위해 노력했지만 고려인삼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에 번번히 실패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임진왜란과 경신대기근 등을 거치면서 국토가 황폐화 됨녀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인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이로 인해 조선 중기를 넘어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고려인삼의 무역으로 인해 거상이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임상옥이다. 조선말기에 청나라에는 미국산 백삼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미국산 백삼에 비해 고려인삼의 효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청나라에서는 미국산 백삼을 취급도 하지 않았다. 이에 미국은 고려인삼을 구매해서 청나라에 판매하는 중계무역을 결심하게 되면서 신미양요를 일으켰지만 결국 패퇴를 해야 했다. 일제 당시 담배, 소금과 함께 빠르게 전매 제도를 시행했다. 일제는 인삼을 전매하면서 그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매청은 개성에 있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개성은 우리나라 땅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매청 직원들도 피난을 가야했는데 문제는 인삼 종자를 미처 갖고 피난을 하지 못했다. 이에 피난을 하고 난 후 전매청 직원들은 ‘삼종회수특공대’를 조직해 북한땅에 침투해 종자를 갖고 무사귀환했다. 이를 ‘삼종회수작전’이라고 부른다. 고려인삼 이름은 현재는 브랜드화돼어 KT&G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KGC)가 유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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