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소련의 경제
[역사속 경제리뷰] 소련의 경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2.04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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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소련의 경제는 유럽에서 연구하던 공산주의와는 다소 차이가 보였다. 칼 맑스가 제시한 공산주의 이론을 소련의 실정에 맞게 바꿨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품을 생산하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며, 자본가는 적정 가격을 책정해 이를 시장에 판매해서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 기본 구조이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제기하는 것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품을 생산하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것을 ‘착취’로 판단했다.
아울러 자본가들은 판매경쟁에서 노동에 들어가는 원가를 절감하면서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하고, 이로 인해 자본주의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소련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취하고 생산수단을 국가가 독점 관리하면서 국가가 생산을 주도하게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생산 이득을 나눠주는 형태가 소련의 경제 구조이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사실 맑스의 공산주의 혁명은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산업국가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농업국가인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도 정부가 안정적이지 못하면서 내전을 겪어야 했고, 이에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식량을 징발하기에 이르렀다. 내전에서 승리를 하면서 그때부터 신경제정책을 구사하게 됐는데 바로 자본주의 도입이다. 1921년에 일방적인 농산물 징발을 식량세로 교체하고, 1923년 단일 농업세가 되면서되면서 현물세를 화폐로 대신하게 됐다. 그러면서 당시 소련의 농업은 협동조합 형태로 조합화되고 기업화됐다. 이에 1920년대 말에는 2800만명이 협동조합에 참여하게 됐다. 정부는 네프만이라고 부르는 사기업을에게 중소 겅업이나 상업 ᅟᅵᆨ관들을 임대할 수 있게 했고, 생산활동에 들어갔다.

스탈린 시대에

스탈린이 집권을 하면서 ‘산업화’와 ‘집단화’를 추구했다. 당시 소련은 소규모 자영농을 중심으로 했다. 스탈린은 집단농장을 통해 곡물을 저렴하게 공급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춰 이윤을 얻으면 다시 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즉, 농민들의 희생 속에서 산업화가 단기간에 이뤄졌다. 집단농장이 추진되기 위해 자영농들은 쁘디브루주아라면서 숙청 대상이 됐다. 그렇게 자영농을 박멸하면서 집단농헙화로 나아갔다. 하지만 집단농업화의 부작용은 홀로도모르같은 대규모 기근 사태가 벌어져 우크라이나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일이 발생했다. 스탈린이 중공업 위주로 산업화를 이뤄내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했다. 소련의 경제성장이 급격하게 이뤄진 때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영국과 미국 특히 미국은 소련과 손을 잡으면서 무기대여법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에 막대한 물자를 제공했다. 소련은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이 가능했다. 소련이 스탈린 집권시 집단경제체제로 전환을 했고, 이것이 전시체제와 맞물리면서 빛을 발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규모 자본이 소련에 투입되면서 소련의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냉전시대에 접어들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미국과의 패권경쟁 즉 냉전시대에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군사력에 집중 투자를 했다. 군사력에 집중 투자를 했다는 것은 소비재 산업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는 1963년 스타린 사후에도 비슷하다. 소련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보다 성장속도가 2배나 빨랐다. 하지만 주로 중공업 위주였기 때문에 소비재 생산이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서 그에 따라 침체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무리한 군비경쟁으로 인해 소련이 병들어 갔기 때문이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세계 1위 산유국이었던 소련에 기회가 되는 듯 했지만 수입품이 곡물이나 서구유럽의 소비재였다는 점에서 암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3저 시대 접어들면서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집권했지만 그 다음해 3저 시대 중에 석유 가격이 급락하면서 소련의 석유 수출은 그야말로 바닥을 치게 됐다. 여기에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면서 재정 고갈이 빠르게 진행됐다. 고르바초프는 개인사업체의 설립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 무역의 독점도 민간에게 조금씩 허용하게 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도 소련 내 산업시설에 투자할 수 있게 했다. 이런 가운데 소련 내부에서는 민족주의가 분출되면서 지방정부가 연방정부에 세금 납부를 거부하게 되면서 소련 경제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동유럽 역시 개혁을 시작하면서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게 됐다. 결국 소련은 사회주의 경제가 붕괴됐다고 판단했고, 이에 소련이 해체되고 오늘날 러시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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