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경제리뷰] 김유정 ‘봄봄’
[작품 속 경제리뷰] 김유정 ‘봄봄’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2.04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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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유정
소설가 김유정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소설가 김유정의 작품 봄봄은 단편소설이다. 주인공이 데릴사위로 예비 장인 소속으로 3년 7개월 동안 새경 없는 머슴으로 일했다.

주인공은 장인의 차녀 점순이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지만 장인은 점순이의 키가 작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결혼을 시켜주지 않았다. 이에 갈등이 불거졌고, 결국 대들기까지 했지만 점순이의 배신(?)으로 결혼을 하지 못한 채 소설은 끝이 난다. 데릴사위로서 주인공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묘사됐다.

데릴사위로 부 축적한 장인

장인은 데릴사위로 부를 축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순이는 데릴사위를 2명 들였지만 2명 모두 도망쳤다. 점순 언니는 14명의 데릴사위를 들였다.

장인은 주인공을 데릴사위로 들였는데 점순이 여동생 즉 셋째가 자라서 데릴사위를 들일 수 있을 때까지 온갖 수단을 다해서 주인공을 붙잡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 역시 새경도 받지 못하고 머슴살이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을 때 점순이가 주인공에게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주인공은 장인에게 들이박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들이박았지만 점순이 배신(?)으로 들이박는 것이 실패했다.

데릴사위는 부여에서부터

데릴사위는 고구려나 부여에서 있었던 풍습이다. 고구려나 부여 사회가 모계사회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다보니 모계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의 집에 가서 일정기간 노동력을 행사하고 그에 따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장가간다(丈家)’는 말은 장인의 집에 간다는 말이다. 그것은 장인집에 일정기간 거주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이후 결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와 부여는 ‘반농반수’ 경제체제였다. 즉 절반은 농사를 짓거나 절반은 수렵을 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와 부여에서는 수렵을 하거나 전쟁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남성보다는 모계사회가 됐고, 이것이 데릴사위를 정착하게 만들었다.

이런 풍습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까지 이르면서 그에 따라 ‘장가간다’는 표현이 계속 이어졌다. 다만 과거에 비하면 노동력 투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굳이 노동력이 필요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데릴사위 풍습이 점차 사라지게 됐다. 조선시대 데릴사위의 흔적은 이항복이나 율곡 이이의 부친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시대 들어와서

조선후기 들어오면서 데릴사위 흔적이 사라지는 듯 했지만 일제강점기 들어오면서 데릴사위 흔적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노비 제도가 사라지고 머슴 제도가 정착하는 것은 물론 토지조사사업 등으로 인해 소작농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딸 부잣집의 경우 머슴을 고용하는 것보다 데릴사위를 들여서 노동력을 제공받고 결혼을 약속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했다.

데릴사위가 보편화되면서 1940년 일본은 조선 민법을 개정하면서 서양자 제도(데릴사위) 부활을 허용했다. 이에 유림과 양반가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반발했다.

해방 이후 1960년 민법이 시행되면서 아내가 친가의 호주이거나 상속자인 경우 자녀가 모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되는 입부혼인(入夫婚姻)이 규정됐다.

오늘날 데릴사위 사례라고 하면 오리온 담철곤 회장을 꼽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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