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고려 현종은 2차 거란 침입 당시 몽진을 했다. 이는 조선 선조의 임진왜란 당시 몽진과 비교가 된다. 몽진이라는 것은 군주제 당시 임금의 어가를 옮기는 것으로 전쟁 등으로 인해 수도를 사수할 수 없을 때 임금이 수도를 버리고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고려 현종의 몽진과 조선 선조의 몽진이 비교가 되면서 고려 현종의 몽진은 ‘잘한 선택’이라는 반면 조선 선조의 몽진에 대해서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둘 다 현명한 선택
다만 군주제 하에서는 몽진은 현명한 선택이다. 즉, 고려 현종이나 조선 선조 모두 몽진은 현명한 선택이다. 그것은 ‘항전의지’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 현종의 몽진과 조선 선조의 몽진이 비교가 되는 것은 그 정치적 배경에 있다. 고려 현종은 고려가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호족 연합국가’로 출발했다. 즉, 일종의 봉건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왕건은 지방 호족들의 권한을 인정하고, 지방 호족들은 왕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서로 간의 연합체 국가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즉, 지방 호족은 언제든지 임금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고려 현종은 나주까지 몽진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그것은 거란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방 호족들에 의해서 위협을 받았다.
반면 조선 선조는 중앙집권 국가이다. 즉, 지방에 몽진을 가더라도 테러의 위협을 받지 않았다. 그것이 고려 현종과 조선 선조의 차이이다.
집권 차이와 침략
고려 현종은 집권한지 1년 밖에 안됐지만 조선 선조는 이미 집권한지 25년이 지난 시점이다. 고려 현종은 강조의 정변에 의해 집권을 했다. 그리고 그 강조는 2차 거란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숙청 당했다. 고려의 실권자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 속에서 고려 현종이 할 수 있는 일은 ‘몽진’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 선조는 25년을 집권했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왜군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것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왜군이 쳐들어올 것인지 등을 알기 위해 통신사까지 보내는 등 임진왜란을 방비하기 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방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려 현종은 방비할 시간이 없어서 속수무책이었지만 조선 선조는 ‘수수방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결사항전 vs 명나라 귀부
고려 현종은 나주까지 몽진을 했지만 거란에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고, 실제로 양규 혹은 김숙흥 등이 거란군을 격퇴시켰다. 반면 조선 선조는 왜군이 평양성을 함락하자 명나라로 귀부할 뜻을 보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명나라가 귀부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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