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한자(Hansa) 동맹은 13세기 초에서 17세기까지 독일 북부 도시들을 중심으로 여러 도시들이 연합해 이뤄진 무역 공동체이다.
중세 독일의 도시에서 활동하던 상회가 모인 공동체이다. 이들이 영국, 발트해까지 영향력을 넓히면서 자체저긍로 해군을 보유하고 교역로를 독점하면서 대항해시대 이전 중세 유럽의 중심지가 됐다.
맹주였던 뤼베크의 깃발을 본따서 위는 하얀색, 아래는 빨간색의 문양을 가진 깃발을 상선기로 사용하였다.
신성로마제국부터
최초의 Hanse는 신성로마제국의 대공위시대가 계속되는 와중인 1267년에 등장했지만 14세기 초 플랑드르가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라인강과 발트해 상업도시들이 상권 확보 및 집단 안보를 위해 길드와 한자를 설치한 것이 시초이다. 무력을 동반한 무역봉쇄를 시도한 것이다.
이때 뤼베크를 중심으로 90여개 도시가 참여했다. 그러면서 한자동맹 상인들이 특권을 갖고 북유럽 교역의 막대한 지분을 갖게 됐다.
한자동맹이 중세유럽에 있어서 교역권을 갖고 막대한 부를 축적해 나갔다. 1370년에 전성기를 맞았고, 리가만에서부터 노르웨이의 베르겐, 플랑드르, 런던까지 말 그대로 북해를 안마당처럼 누볐으며, 강을 타고 올라가 독일 내륙의 중계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군사력도 보유
군사력도 보유를 했는데 1402년에 발트해의 해적 클라우스 스퇴르테베커와 고디어 미헬스를 소탕했고, 1426년 칼마르 연합의 왕 포메른의 에리크가 무역선들로 하여금 자신의 영토인 준트를 지나갈때 통행세를 요구하자 선전포고를 날렸다.
하지만 무역의 중심이 바뀌면서 점차 쇠퇴했다가 17세기 쇠락했다. 단적인 예가 16세기 말 엘리자베스 1세 시기에 잉글랜드 내 교역의 중심이 잉글랜드 상인들에게 넘어오면서 스틸야드의 특권이 회수되면서 무너진 것이고, 결정적 계기는 30년 전쟁이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국민 국가의 개념이 자리 잡히면서 도시 연합체가 지정학적인 권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청어가 자취 감추면서
한자동맹이 쇠퇴하게 된 것은 종교개혁 후 한자 도시들이 종교적 분열이 일어났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 발견 후 무역로가 대서양으로 옮겨간 것도 한 몫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자동맹의 주여 무역품이었던 청어의 산란 장소가 16세기 들어서 발트해에서 북해로 이동하면서 무역품목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네덜란드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네덜란드는 청어산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고, 이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탄생시켰고, 세계 최초 주식회사도 개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