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증가 등
바이킹이 8세기부터 유럽 전역에 진출하게 된 것은 고대 로마의 멸망이다. 그것을 통해 유럽이 중앙집권국가가 되지 않으면서 바이킹이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또 다른 이유는 인구의 증가이다. 8세기 유럽은 농업기술이 발달했다. 게0다가 기후는 따뜻해졌다. 그것은 인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다. 북유럽 역시 인구는 증가했다. 문제는 기후가 추웠기 때문에 농업의 생산량은 성장하지 못하면서 그야말로 농사로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 반면 유럽은 고대로마가 붕괴되면서 점차 부유해졌다. 그것은 그 땅에서 생산한 생산품을 고대 로마의 수도 로마에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땅에서 소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슬람과 소아시아를 통해 동방과의 무역이 이뤄지면서 막대한 부를 쌓아갈 수 있었다. 반면 북유럽은 동북아와의 무역 혜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가난한 지역이 됐다. 즉, 다른 유럽은 부자 지역인 반면 북유럽은 가난한 지역이 되면서 부의 불균형 현상이 발생했다. 반면 봉건시대로 접어들면서 유럽 각국은 중앙집권화가 이뤄지지 않자 바이킹이 쉽게 격파를 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먼바다를 나아갈 수 있게 되면서 그에 따라 바이킹의 유럽 진출이 가능해졌다.쇠퇴한 이유
바이킹은 8세기부터 전성기를 보였지만 10세기 말부터 조금씩 빈도가 줄어들더니 11세기 중반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이유는 서유럽이 바이킹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유럽 영주들은 곳곳에 바이킹들의 기습을 막을 초소와 기지들을 세웠다. 또한 중무장한 중세 유럽 기사들의 등장 역시 바이킹의 공격을 막아내기 충분했다. 기존에는 주로 보병을 위주로 방어를 했다면 중세유럽에 접어들면서 중무장한 중세 유럽 기사들이 방어를 하면서 바이킹의 공격을 막아내기 충분했다. 또한 농노제의 확산은 바이킹에게는 치명타가 됐다. 바이킹은 점령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노예로 팔아 넘기는 노예 무역을 해왔는데 농노제가 중세시대에 정착을 하면서 더 이상 노예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자기 땅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농노들이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데 굳이 비싼 돈을 내고 말도 안 듣는 새 노예들을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