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월 22일 3당 합당으로 민자당 탄생
[역사속 오늘리뷰] 1월 22일 3당 합당으로 민자당 탄생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1.22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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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90년 1월 22일은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을 선언한 날이다. 이른바 3당 합당이다. 그렇게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그리고 민주자유당은 현재 우리나라 제1 보수정당의 명맥을 잇고 있다.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자 2년만에 도로 여대야소가 됐고,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 남게 됐다. 이로 인해 호남 vs 부산 경남 vs 충청 vs 대구 경북의 4자 구도로 된 지역 정치 구도가 호남과 비호남으로 단순화되면서 지역주의가 고착화됐다.

6월 항쟁으로 쟁취했지만

1987년 6월 항쟁으로 국민은 직선제를 쟁취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치러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양김의 분열로 민주정의당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은 125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 등 헌정사상 집권여당이 과반수 획득에 실패를 하면서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그러면서 집권여당이 독식했던 국회부의장, 상임위원장을 정당 의석수대로 배분하는 관례가 처음 생기는 등 여야 4개 정당의 협상에 의해 모든 의정활동이 이뤄졌다. 실제로 5공 청문회 등이 이뤄지기도 했다. 기득권 세력인 노태우와 민정당 등을 비롯해 보수 언론들은 매우 불안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사회 곳곳에서 분출된 다양한 목소리는 기존 질서를 흔든다고 보수 언론들은 판단했다. 무엇보다 노태우 이후의 상황을 걱정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여소야대 상황이 된다면 기득권 세력은 노태우 이후 정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기 시작했다.

YS도 위기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제2야당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총선에서 평님당에 뒤진 것이다. 3당 합당 이전까지만 해도 김대중의 평화민주당보다 더 선명 야당을 표방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이대로 간다면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 밀릴 것이라는 위기감은 형성됐다.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야당 생활이 달갑지 않았지만 내각제를 외치고 있지만 내각제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3당 합당 거부했던 사람들

3당 합당이 이뤄졌지만 야합이라면서 끝까지 거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김상현, 김광일, 장석화, 노무현, 김정길이었다. 이기택 통일민주당 부총재 역시 합당 거부로 정하면서 이철, 박찬종 등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했다. 이에 민주당에 소속된 인물은 이기택, 김광일, 장석화, 노무현, 김정길, 이철, 박찬종, 허탁 등 8명이면서 언론에서는 이 민주당을 ‘꼬마민주당’이라고 불렀다.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에서도 김현 의원dl 합류를 거무하면서 꼬마민주당과 신민주연합당이 합당하면서 민주당을 창당하자 여기에 참여했다. 다만 무소속이었던 정몽준, 유한열은 3당 합당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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