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스위스 용병
[역사속 경제리뷰] 스위스 용병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2.13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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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스위스 용병은 중세시대 때 맹위를 떨치던 군대를 말한다. 물론 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면서 현재 이탈리아 교황청의 근위대가 스위스 용병으로 채워졌다. 스위스 용병은 네팔 구르카족, 프랑스 외인부대와 더불어 용병의 전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위스 용병은 일종의 산업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산업으로 인해 스위스는 가난한 나라였지만 돈을 벌 수 있었다.

용병업으로 나라 유지

스위스가 어느 시기부터 용병업이 국가사업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13세기부터 스위스 용병의 강인함이 유럽 최강이라는 정평이 나있었다.

스위스가 알프스 등 산지가 있었기 때문에 농경으로도 무역으로도 생활할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자연환경에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강인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스위스 사람들은 용병업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무엇보다 스위스는 합스부르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밀집대형의 진법을 완성했다. 그 이유는 말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 나라도 아니었고, 재력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창으로 버텨야 했고, 그러다보니 나 이외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믿어야 했고, 그것이 밀집대형의 진법을 완성했다.

즉, 상대방이 기병이나 보병으로 밀어붙여도 진법이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강력한 군대가 됐다.

마을 단위로 군대가 꾸려지게 되고, 마을 단위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군대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프랑스와 독일은 중세 시대 당시 전란이 계속 이어지면서 왕이나 영주들은 용병이 필요했다.

더욱이 중세시대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에 왕이나 영주들이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는 것은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즉 농노들에게 경작을 맡기고, 왕이나 영주는 자신의 군대를 재력을 통해 스위스 용병으로 충당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아울러 스위스 용병은 한번 고용주와 계약을 하면 죽기까지 계약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이유는 신용의 하락이 결국 마을의 경제적 활동이 무너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만약 용병이 탈주를 하거나 고용주를 배신하면 법으로 처벌됐다.

오죽하면 고용된 스위스 용병끼리도 적이 되면 치열하게 싸우면서 오히려 고용주가 스위스 용병끼리는 싸우지 못하게 했을 정도였다.

스위스 용병 용맹성 맹위 떨치고

중세시대에는 특히 프랑스와 독일 지방은 전란이 연속이었다. 그러다보니 군대가 부족하게 됐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왕과 영주는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상대에게 포로가 된다고 해도 몸값이 쌌기 때문에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너도나도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이탈리아에는 도시국가가 세워지면서 스위스 용병의 고용이 부쩍 늘어났다.

문제는 독일에서 스위스 용병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하면서 란츠크네히트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초창기에는 스위스 용병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허약했다.

란츠크네히트는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의 눈에 들기 시작하면서 신성로마제국 제국군에 편성되면서 각종 전투에 나가면서 점차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여기에 총검술 등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반면 스위스 용병은 계속 창검술을 고집해왔다. 총기 시대에 창검술을 고수하면서 스위스 용병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1522년 비코가 전투는 스위스 용병의 몰락을 가져온 전투였다. 또한 1525년 파비아 전투 역시 패배를 하면서 스위스 용병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다만 스위스 용병은 계속해서 충성심을 보였고, 특히 1527년 사코 디 로마 당시 카를 5세의 군대에 맞서 교황과 로마를 사수하는 치열한 전투를 했다. 물론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주 교황을 위해 싸웠고, 이에 바티칸은 감명을 받아 지금까지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고 있다.

스페인은 16세기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네덜란드 독립을 막기 위해 스위스 용병을 고용했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스위스 용병이 전쟁터에서 죽자 스위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한 스위스 정부는 1848년 연방헌법을 제정해 연방국가가 되면서 헌법으로 용병 수출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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