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텔레비전(TV)
[역사속 경제리뷰] 텔레비전(TV)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2.22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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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텔레비전은 전파신호를 받아 그것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전자기기이다. 텔레비전 이름은 멀리 떨어진 화상이라는 뜻으로 ‘tele’와 ‘vision’이 합쳐진 말이다. 아일랜드 전신기사 조지프 메이가 셀레늄의 광전효과를 발견하면서 텔레비전에 대한 인류의 구상이 시작됐다. 빛을 셀리늄판에 투과시켜 전자신호로 바꾸고, 역으로 전사신호를 셀리늄판을 통해 빛으로 발산하면서 화면을 보이게 하는 기술을 알렉산더 베인이 개발했다.
이후 독일 전기기술자 파울 고틀리프 닙코가 닙코 디스크라는 것을 개발하면서 텔레비전의 원형이 점차 갖춰지기 시작했다.

브라운관은

오늘날 불리는 브라운관은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이 1897년 전자를 쏘아서 형광 물질을 때리는 방식의 브라운관을 발명했다. 1926년 일본 다카야나기 겐지로가 브라운관을 이용한 텔레비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1927년 미국 필로 판스워스가 세계 최초로 완전한 전자식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발명하면서 본격적인 텔레비전의 시대가 열렸다. 1950년 4월 미국 CBS에서 컬러TV를 선보였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1950년대 초 외국으로부터 흑백 텔레비전을 수입했고, 텔레비전 방송은 1956년 5월 12일 대한방송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최초의 국산 TV 수상기는 금성사 VD-191로 1966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고, 1968년까지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잣집만 TV수상기가 있을 뿐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서민들에게 보급이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시 정부가 뉴스 등의 전달 목적으로 TV 물품세를 면제하면서 저가형 TV가 공급됐기 때문이다. 1972년 금성사는 진공관을 버리고 트랜지스터로 바꾸는 ‘소프트화면 브라운관’을 개발했다. 1975년 삼성전관은 ‘이코노 브라운관’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 삼성전자가 만든 ‘이코노TV’에 적용시켰다. 1970년대 이미 컬러TV 생산이 가능했고, 컬러TV 송출도 가능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신문사의 반발 때문에 컬러TV 시대를 열지 못했다. 왜냐하면 컬러TV 시대가 되면 종이신문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컬러TV 시대로

그러다가 1980년 전두환의 국보위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컬러TV 시대가 열렸다. 컬러TV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TV가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전두환 시대 당시 3저 호황과 겹치면서 TV를 구입하지 않으면 중산층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컬러TV의 보급은 아이들의 생각의 폭을 넓히게 만들었고, 그것은 1990년대 X세대 문화를 낳게 했고, 오늘날 K한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특히 TV브라운관과 비디오플레이어의 결합은 외국 선진 문물을 담은 영상을 안방에서 시청 가능하게 하면서 수많은 해외 문화를 접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새로운 창작의 열기로 이어지게 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PDP/LCD TV도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TV의 고급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부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평면 CRT, CCFL 백라이트 LCD, PDP를 본격 생산하면서 평면화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LCD TV로 옮겨갔고, OLED TV의 출현으로 오늘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전세계 TV 시장을 주름잡는 기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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