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에서 비롯된 사건
이날 영국군 병사들이 행군을 했는데 어떤 소년이 “꼭 랍스터 같구나”라고 비웃으며 놀려댔는데 그것에 격분해 소년을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군홧발로 짓밟았다. 당시 영국군은 붉은 제복을 입었는데 꼭 삶은 랍스터 같다고 놀려대는 풍습이 있었다. 소년을 폭행하자 시민들은 영국군이 아이를 때린다면서 항의를 했고, 보스턴 시민들과 영국군 간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영국군은 장교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총을 쏘게 됐고, 시민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가 됐다. 점점 긴장이 고조되자 식민지 총독은 시민들이 자진해산을 한다면 정당한 재판을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소년이 ‘랍스터 같다’고 놀려댔다는 것은 확인을 하지 못했다. 그냥 소문으로 나돌았을 뿐이다.재판이 열리고
약속대로 발포한 병사 8명과 당직사관 등이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그러면서 치열한 여론몰이가 이뤄졌다. 영국군 변호사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가 선임됐다. 그리고 재판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재판 과정에서 시민들이 꽤 위협적인 행동을 보였고, 프레스턴 대위가 사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배심원들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병사 두명만 과실치사 등으로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미 반영 심리는 크게 확산되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보스턴 차 사건에 영향을 주게 되면서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