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82년 4월 2일은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하면서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했다.
현대전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정규군 간의 해전은 포클랜드 전쟁 이후로 없기 때문에 현대 해상전의 교과서이다. 그리고 몰락한 영국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알린 전쟁이기도 하다.
영국 실효적 지배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이 실효지배하고 있으나, 영유권은 불분명했다. 이에 아르헨티나가 1950년대부터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긴장감이 상당히 흐르고 있었다.
1976년 아르헨티나에는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오면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자본과 외채를 대규모로 도입했다. 하지만 1980년 금리인상 등으로 이자율이 급상승하면서 재정난이 극심해졌다.
이에 군사정부는 국민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포클랜드 제도에 있는 영국군이 그 타겟이 됐다.
영국이 한때 세계 최강국이었지만 제1차~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몰락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 본토와는 상당히 먼 거리이기 때문에 대규모 해군을 파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포클랜드 제도에는 주민 1500명과 영국 해병대 50명만 있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기습을 한다면 해볼만한 전쟁이라고 판단했다.
아르헨티나 군대 공격
이에 4월 2일 아르헨티나 군대가 포클랜드 제도를 공격하면서 영국 해양수비대를 굴복시킨 후 영국 정부는 탈환하기 위해 해군 기동부대를 구성했다.
4월 25일 영국 해군 기동부대는 1만 3천km를 순항하면서 조지아 섬을 탈환했다. 5월 2일 아르헨티나 순양함은 영국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그러면서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최종적으로 영국군이 승리를 하면서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는 1983년 민간정부로 대체됐다.
영국 건재함 알린 전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몰락했다고 전세계가 생각했는데 포클랜드 전쟁은 영국의 건재함을 전세계에 알린 전쟁이다.
포클랜드 전쟁의 전사자는 영국 측에서 255명, 아르헨티나 측에서 649명이 발생했다. 이후 21세기까지 양측 참전 용사 중 자살자의 수가 전사자를 넘었다는 말도 있지만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포클랜드 참전 군인의 7%, 즉 95명이 자살과 관련된 죽음을 맞았다.
포클랜드 전쟁 이전 영국은 경제가 크게 위축되면서 영국 국민들의 자존감이 상당히 낮았다.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 이후 경제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처 당시 수상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는 계기가 됐다. 대처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에 힘입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구사하면서 영국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