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칼 개척자들이
이후 포르투칼 개척자들이 내륙 강 상류로 배를 타고 올라가면서 남미 대륙 내륙 대부분을 추가하면서 현재 브라질 영토의 틀을 잡았다. 그러면서 스페인은 남미대륙 서해안을 점령해야 했다. 문제는 스페인 점령한 남미대륙 서해안 지역 즉 라틴아메리카 식민지 지역에서는 금, 은, 구리, 주석, 납, 백금 등 지하자원이 쏟아져 나온 반면 브라질에서는 자원개발이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대항해시대 초창기에는 브라질에 대해 실망을 했고, 결국 인도 교역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게다가 브라질은 열대우림 지역이기 때문에 개척이 쉽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도로와 도시 등을 갖췄고, 옥수수 재배가 가능했지만 브라질은 열대우림이었기 때문에 원주민들도 많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나마 존재했던 원주민들도 포루투칼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전염병에 감염되면서 많은 인구가 감소했다.플렌테이션 농업도
서인도제도 등에서는 사탕수수 등 플렌테이션 농업이 가능했지만 브라질에서는 그나마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포르투갈인 대농장주들이 겨우 찾아낸 것이 ‘파우 브라질’ 이라는 빨간색 염료의 원료가 되는 나무였다. 1808년 나폴레옹이 포르투칼을 침공하면서 왕실이 브라질로 망명을 떠나면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가 포르투칼 왕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위상이 커졌다.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포르투칼 왕국이 다시 본토로 돌아갔지만 브라질은 포르투칼 본국과 맞먹으려고 했다. 그러자 왕실은 브라질 위치를 격하하면서 탄압했다. 이에 1822년 포르투칼 의회에서 브라질 제국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왕세자 동 페드루가 황제로 등극했다. 이에 1822년부터 1825년까지 브라질 독립 전쟁이 발발했다. 1825년에 브라질 최남단에 있던 시스플라티나 주(현 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립에 나서자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500일 전쟁을 일으켰다.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이런 내전 과정에서 프데루 1세는 1830년 5살 짜라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포르투칼로 도망쳤다. 페드루 1세 축출로 브라질은 내전 상태에 빠졌지만 페드루 2세가 성인이 돼서 친정을 시작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페드루 2세는 커피 재배 등을 통해 강력한 경제발전 정책을 취했다. 1888년 노예제 완전 폐지를 선언하면서 농장주 등 기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커졌고, 1889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군주제에서 공화국으로 바뀌게 됐다. 또한 커피 재배는 브라질의 부를 축적하게 만들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