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석유 파동으로
1974년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물가상승률이 20%대로 치솟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포항 일대에 석유가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받고 시추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수많은 지질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없다’고 반대했지만 제1차 석유파동을 겪고 있는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정권의 운명을 시추에 걸었다. 이에 1975년 포항 영일만 일대에서 시추가 시작됐다. 다만 비밀리에 이뤄졌다. 이에 중앙정보부가 ‘위장회사’를 세워서 시추 작업에 들어갔다. 중앙정보부가 시추에 들어간 것은 당시 막대한 자금과 보안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석유 시추를 중정이 맡게 된 것이다. 당시 대한석유공사가 있었지만 석유공사가 시추작업을 할 경우 미국으로 정보가 들어갈 수도 있고, 시추에 따른 개발 이익을 미국이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75년 12월 갑자기 석유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만 ‘양’이 드럼통 한 개 남짓이었다. 물론 당시 현장 근로자들은 기뻐했다. 그리고 청와대에 즉각 보고가 됐다. 석유 샘플이 청와대에 전해지자 각료들은 샘플을 직접 맛보기도 했으며, 공식행사에서 석유가 나온 것 같다고 흘리기도 했다. 아울러 1976년 1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밝히기도 했다.꿈은 산산이 깨지고
그리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오원철 제2경제 수석비서관을 불러 책상 위의 재떨이에 채취한 기름을 직접 붓고 불을 붙여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끼게 됐다. 원유라는 것이 불을 붙이면 순간적으로 펑하면서 불꽃을 일으켜야 했다. 하지만 포항에서 발견된 석유는 얌전히 타기만 했다. 이에 전문가들에게 샘플을 보내 분석하기로 했다. 그리고 분석한 결과 경유 성분이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정은 계속해서 시추를 했지만 석유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포항 석유 조작설까지 나왔다. 일각에서는 석유가 나온 시추공 바로 옆에 시추를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냉각수는 물로, 윤활제로 경유를 상당히 주입시켰고, 이것이 석유가 나온 시추공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정제된 기름인지 진짜 원유인지는 아직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왜나하면 진짜 원유도 1드럼통 정도 발견되기 때문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