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페인버스터 있어서 버텼는데” 산모들 비난…복지부 부랴부랴 ‘재검토’
합계출산율 0.68명 저출산 시대…산모들의 경제적 부담만 키우는 정부?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정부가 제왕절개 출산 이후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국소마취제)’를 함께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방침을 발표하면서, 산모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제왕절개를 경험한 산모들은 “그나마 페인버스터가 있어서 고통을 버텼는데 뭐하는 짓이냐”, “저출산이라면서 페인버스터를 급여로 전환하는 것도 아니고 쓰지 말라니”, “배와 장기를 짼 고통을 그냥 버티라는거냐”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보건복지부는 부랴부랴 행정예고를 ‘재검토’ 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통주사에 페인버스터를 추가로 사용할 경우 환자 본인부담률을 80%→90%로 상향 조정한다는 부분 때문에 사실상 제왕절개 산모들의 ‘경제적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합계출산율이 0.7명 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국가소멸이 우려되는 저출산 상황인데도, 현 정부가 산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5월3일부터 10일까지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을 행정예고하고 오는 7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중에서도 ‘개흉‧개복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와 관련한 부분이 논란이 됐다.
여기에는 사실상 제왕절개로 분만할 때 급여인 ‘무통주사’와 비급여인 ‘페인버스터(국소 마취제 투여법)’ 중에서 1종만 맞게 하고, 예외적으로 요양급여가 인정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본인부담률을 80%에서 90%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페인버스터(Painbuster)’는 일반적으로 제왕절개 수술시 사용되며, 수술 부위에 삽입된 미세 주입관인 카테터를 통해서 국소마취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는 장치를 말한다. 수술한 부위에 집중적으로 통증을 차단시켜 산모의 회복을 돕는다.
‘자연분만’이라 불리는 질식분만(vaginal delivery)과 달리 ‘제왕절개’는 피부 아래의 살이라 할수 있는 ‘피하지방’ 외에도 근육을 싸고 있는 ‘근막’, 내장기관을 싸고 있는 ‘복막’, 최종적으로 장기인 ‘자궁’까지 절개해서 아기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벌려야 하기 때문에 매우 깊게 절개가 이뤄진다.
제왕절개 이후에는 장기유착을 막기 위해 조금씩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개복에 따른 고통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산모들이 많다. 페인버스터는 고통을 상당히 경감시켜줘서 산모의 움직임에 도움을 주는 약물 투여법으로써 현장에서 각광 받고 있다.
다만 페인버스터는 비급여기 때문에 13만원에서 40만원 수준으로 비싸다. 만일 본인부담율이 90%까지 높아지면 최대 50만원까지 비용부담이 커진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임산부들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불안감이 섞인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산부인과에 관련 내용을 문의하는 산모들도 속출했다.
제왕절개로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는 30대 여성 A씨는 “그나마 페인버스터가 있어서 고통을 버틸 수 있었다. 페인버스터는 비급여라서 원래 비쌌는데 급여로 전환해서 산모들의 비용부담을 줄이진 못할망정 쓰지 말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냐”며 “정책을 짜는 사람들은 배를 째는 고통을 겪어 봤는지 묻고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출산을 앞두고 있는 또다른 30대 여성 B씨는 “전치태반이라서 무조건 제왕절개로 출산해야 하는데, 무통주사만으로 그 고통을 생으로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된다”며 “정부에서 너무 출산의 고통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말로는 저출산이라면서 안 그래도 힘든 산모들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말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보건복지부는 “수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를 다른 통증조절 방법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관련 학회 및 다수 전문가 의견”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래서 직접 경험은 해봤냐”, “통증에 대한 정도도 개인차가 있는데 복지부가 뭐라고 선택권을 제한하냐”, “제왕절개 산모들은 아파 죽으라는 소리냐”, “무서워서 애 낳겠냐” 등등의 비난 뿐이었다.
결국 보건복지부에서 한발 물러섰다. 페인버스터도 본인이 원하면 비급여로 맞을 수 있도록 재검토 하겠다며 기존에 내놓은 행정예고를 사실상 없던 일로 만들었다.
복지부는 11일 설명자료를 통해 “당초 행정예고안은 1종만 맞게 했지만, 2종 다 맞을 수 있도록 하되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며 “선택권을 존중해 달라는 산모와 의사 의견, 앞서 수렴한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개정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가 뒤늦게 재검토 입장을 내놓았지만, 산모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으로 현장의 혼선만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병용투여가 가능한 길은 열렸지만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방향’이라는 부분 때문에 산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키운다는 논란도 여전히 남아있는 모양새다.
특히 정부가 무려 20여년간 저출산 해결을 위해 380조원을 투입했음에도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을 넘어 0.68명까지 하락할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아이를 낳는 산모들을 지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경제적 부담을 키우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