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9년 6월 26일은 서울 경교장 자택 서재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총에 의해 암살 당한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이날 김구 선생은 점심식사를 하고 서재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육군 포병사령부 장교이자 한국독립당 당원이었던 안두희가 군복 차림으로 백범 선생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왔다면서 찾아왔다.
당시 비서진도 설마 안두희가 김구 선생을 암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안두희 허리춤에 권총이 있었지만 군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제제 없이 통과시켰다.
먹을 갈아 드릴까요
김구 선생 앞에 나타난 안두희는 “선생님. 먹을 갈아드릴까요?”라고 했고, 김구 선생이 고개를 들어 안두희를 보려눈 순간 안두희는 권총을 꺼내들어 4발을 쏘았다.
안두희는 경교장을 빠져나갔다가 경교장 경비들에게 잡혀 헌병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안두희는 김구 선생이 남북 협상을 통해 정치 사회에 혼란을 주고 공산주의자들을 자극시키고 찬동시키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김구 선생을 죽였다고 말했다. 이후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육군형무소에 수감됐으나 형기가 15년으로 감형됐다.
안두희 단독 범행
당시 헌병 부사령관은 안두희 개인의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으며 이승만 역시 한독당 내부의 집안싸움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형집행정지로 석방시켜 군에 복귀시켰고, 계급을 소위에서 소령으로 특진시켰다. 예편 후 안두희는 강원도 양구군으로 건너가 군납공장을 차려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다. 이후 안두희를 처단하자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하지만 1996년 10월 23일 인천 신흥동 자택에서 버스기사 박기서가 휘두른 정의봉에 두들겨 맞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