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E채널 프로그램 ‘마법의 성’에서는 초등학생 성교육을 다뤘는데 요즘 아이들의 첫 연애 시기를 평균 11살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최근에는 1교시 사귀기 등 독특한 연애가 있다는 것.
그것은 ‘모태솔로’에 대해 안타깝거나 부끄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연애는 금기된 단어가 아니게 됐다.
연애 연령이 점차 낮아지면서 그에 따른 부모의 아이 대하는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성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지적이 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남녀칠세부동석이란 유교 경전 예기(禮記) ‘내칙(內則)’ 편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가 6살이 되면 수와 방향의 이름을 가르치고, 7살이 되면 이부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함께 밥 먹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는 7살 이후 이부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부자리 한자인 ‘蓆’가 앉은자리 ‘席’으로 바뀌면서 같이 앉지 않는다는 것으로 와전됐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에서는 남녀의 문란한 관계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진나라 진헌공은 태자비로 예정된 며느리를 가로채서 부인으로 삼았고, 그 부인으로부터 아들을 낳자 태자를 죽여 버렸다. 이에 진나라는 수십년의 내전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중국 역사에서 며느리를 가로채서 자신의 부인을 삼은 왕이 속속 나오면서 공자의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가르침이 유효해졌다.
조선시대 중매혼 그리고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칠세부동석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그것은 바로 중매혼 때문이다. 조선시대에서의 결혼은 ‘집안’과 ‘집안’을 맺어주는 경사였다. 따라서 ‘연애’가 필요없게 됐다. 즉, 연애하는 방식 등을 굳이 알 필요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7살이 되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구분 짓고 따로 놀게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춘향전 등에서 자유연애를 꿈꾸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소설’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초혼이 흔해지면서 남녀칠세부동석은 고정불변의 원칙이 됐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치면서 혼인연령이 조금씩 올라가고, 자유연애가 사회적 풍조로 번지게 되면서 남녀칠세부동석을 굳이 지켜야 하냐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학교, 여자 학교를 따로 구분하고, 청소년들에게는 남자와 여자는 따로 다니게 하는 등 구분을 하게 했다. 그러면서 이성교제 자체를 금지시켰다. 특히 이성교제는 ‘성적을 떨어뜨린다’는 논리를 내세워 이성교제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하게 했다. 이때 내놓은 논리도 ‘남녀칠세부동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