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면천 계기
세종16년 해시계인 앙부일구보다 3개월 빨리 내놓은 시계이다. 앙부일구가 해시계이다보니 흐린 날이나 밤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에 자격루의 발명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을 알려주는 소중한 시계 장치였다. 자격루는 물의 증감을 통해 일정량이 모이면, 쇠구슬을 굴려 정해진 시간에 종과 북, 징이 저절로 울리도록 했다. 원래 세종 15년인 1433년 장영실 등에 의해 처음 제작됐고, 이 공로로 장영실은 관노의 신분에서 호군으로 격상됐다. 하지만 정밀함이 떨어진다고 해서 다시 제작된 것이다. 문종 때 고장나고, 단종 때에는 기존의 것을 보수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러다가 1536년(중종 31)에 장인 박세룡(朴世龍)이 다시 제작했다. 이것이 현재 남아있는 자격루다. 창경궁 자격루 또는 보루각 자격루라고도 불리며 후에 1985년 국보 제229호 지정되었다. 현재는 2018년부터의 보존작업을 통해 2020년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시간을 지배하다
자격루의 가동은 조선시대가 ‘시간’을 지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현재와 같은 24시간 체제가 아닌 12시간 체제였다는 점에서 현대보다 그 정확성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료들은 언제 출근하고 언제 퇴근할지를 알았고, 어떤 근무를 해야 할지도 알았다. 자격루가 제공하는 시간은 ‘관료’에게만 혜택되는 것이 아니라 농업, 공업, 상업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됐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대로 24시간 체제가 아닌 12시간 체제이기 때문에 현대의 시간 개념보다는 광범위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시간 작동 원리도 달랐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코리안 타임’이라는 것이 사회에 만연되기도 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