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열린 행사
새로운 업적 찾으려는 노태우 정부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노태우 정부는 새로운 업적을 찾아야 했고, 이에 박람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진국이 됐다는 기준 중에 ‘올림픽’과 ‘박람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1991년 ‘국제무역산업박람회’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당시 대규모 예산을 배정하기 힘들다면서 정치권에서 반대가 심했다. 개최를 하려면 ‘국제박람회기구’의 공인을 받으라는 것이다. 당시 국제박람회기구는 엑스포가 워낙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엑스포 개최를 공인하지 않겠다고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상태다. 즉, 반대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국제박람회기구가 공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조직위원회는 국제박람회기구가 ‘저예산’ 신개념 엑스포를 어필했다. 그것은 박람회가 아닌 테마파크 형태의 박람회이다. 실제로 엑스포가 끝나고 나서 엑스포과학공원이라고 이름만 바꾸고 운영해왔다는 점에서 박람회보다는 오히려 테마파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1400만 명의 관람객이 엑스포 기간 동안 다녀갔으니 우리나라 인구 1/3은 해당 전시장들을 관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엑스포 이후 엑스포에 대한 열기가 식을 수밖에 없었고, 관람객이 줄어들면서 유지·보수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됐다. 결국 대전엑스포는 이제 대전의 상징이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