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패션, 가치를 담다”

“가성비와 프리미엄을 동시에”...‘착한 명품’ 날았다

2017-09-29     남인영 기자
[파이낸셜리뷰=남인영 기자] 올해 패션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성비’다.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가격 대비 높은 만족을 주는 제품들이 굳게 닫힌 소비자의 지갑을 연 것이다. 사치나 과시를 위한 소비와는 달리 가성비가 제품 구매의 주요한 키(key)가 된 것은 물론, 무조건 저렴한 가격대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품질, 그리고 명품의 가치를 동시에 갖춘 제품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패션·유통업계에서는 가성비와 프리미엄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며 깐깐해진 소비자들의 마음 잡기에 나섰다. 고가의 명품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 최고급 품질과 가치를 갖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대로 선보이며 명품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품격, 핸드백에도 ‘착한 명품’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8월 론칭한 ‘장 샤를 드 까스텔바쟉’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까스텔바쟉의 예술적 영감을 바탕으로 ‘Affordable luxury(합리적인 가격의 명품)’를 지향하는 백·액세서리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유니크한 아트를 기반으로 화려한 디테일을 추구하는 글램코어(Glamcore) 트렌드를 더해 단순한 잡화가 아닌 ‘예술작품’으로서의 특별한 가치를 담았다. 아울러 버버리, 프라다 등 해외 명품 브랜드의 원자재 공급과 제품 생산을 맡고 있는 글로벌 제조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최고급 품질을 확보했다. 여기에 주력제품의 가격대를 30~50만원 선으로 책정하며 제품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착한 명품’으로 명품 핸드백 시장의 지형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백화점 가을 매장 개편 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전국 11개 주요백화점에 입점하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의류 브랜드 역시 비즈니스 캐주얼에 대한 수요 확대에 맞춰 실용성과 고급스러움을 겸비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9월 초 론칭한 여성복 브랜드 ‘V라운지’는 간결하고 편안한 디자인과 고급 소재가 만나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캐시미어, 울 저지 등 고급 소재를 사용해 부드러운 착용감을 선사한다. 주요 제품의 가격대는 하의 20~30만원, 상의 20~40만원 등 전반적으로 합리적인 가격대로 구성됐다. 유통업체 역시 가성비 높은 프리미엄 패션전쟁에 가세했다. 현대홈쇼핑은 9월 초 디자이너 정구호의 고급 여성복 브랜드 ‘J BY’를 단독으로 론칭했다. 가격대는 8~30만원대로, 정구호 디자이너가 이전에 론칭한 ‘구호’, ‘르베이지’ 등의 브랜드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책정됐다. 롯데백화점 역시 지난해 9월 자체 니트 브랜드 ‘유닛’을 론칭했다. 고급 캐시미어 100% 니트를 주력 아이템으로 내세우며 고품질에 합리적인 가격을 통한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해 고가의 활용도 낮은 명품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급스럽고 유니크한 제품을 찾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가성비와 고급 품질을 갖춘 ‘착한 명품’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고가의 해외 브랜드에 편중돼있던 하이엔드 패션업계의 구도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