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인터뷰] 조용경 前 포스코 엔지니어링 CEO ‘미얀마’와 사랑에 빠지다
2019-05-27 이성민 기자
본인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박태준 맨’으로 부르곤 한다. 실제로 포스코를 설립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국회의원을 하던 지난 1981년 보좌관으로 그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자민련 총재 비서실 차장까지 지냈고, 포스코건설 송도사업본부장과 포스코 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거쳐 지난 2012년 은퇴했다.미얀마의 매력에 빠진 사연은?
미얀마는 스스로를 ‘황금의 나라, 미얀마’라 일컫는다. 처음 미얀마를 찾았을 당시 그 말을 비웃었다. “쥐뿔도 없는 나라가…” 하며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얀마를 무시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는 아직도 분쟁이 있어 이 지역 여행이 쉽지 않았을 뿐더러, 일인당 국민소득 1200달러 정도의 가난한 나라이지만 미얀마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와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만나면 만날수록 닫힌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40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처럼 따뜻한 경험을 한 나라는 처음이었다. 마음을 열고 미얀마를 바라보니 미얀마의 문화 수준이 높을뿐더러 이타심이 강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실제로 미얀마는 최빈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기부 인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미얀마는 매번 다른 풍경을 선물했다.미얀마의 현재 경제 상황은?
미얀마는 1960년대 아시아에서 일본, 필리핀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오랜 기간 우리나라에 쌀을 원조해 주기도 했다. 60대 이후 사람들이 기억하는 ‘안남미’가 바로 미얀마의 쌀이다. 하지만 미얀마는 여전히 1960년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50여 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미얀마의 근현대사를 알아야 한다. 미얀마를 생각하면 ‘아웅 산, 네 윈, 아웅 산 수지’, 이 세 인물을 빠뜨릴 수 없다. ‘아웅 산’은 미얀마 독입을 이끈 주역이며, ‘네 윈’은 장기 군부독재로 미얀마의 경제를 후퇴시킨 장본인이다.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나라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미얀마 덕에 은퇴 후 또 다른 열정을 찾았다는데
미얀마 여행을 통해 새롭게 보고 느낀 점을 4년간 꾸준히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했다. 연재를 이어가자 블로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 단체의 요청으로 ‘미얀마는 어떤 나라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었다.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수차례 미얀마 여행을 했다. 은퇴 후 잠시 주춤했던 인생에 새로운 활력을 찾은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떠난 미얀마로의 여행에서 열정이 살아 있음을 발견했다. 열정의 발견은 곧 젊음의 탄생을 의미했다. 미얀마 여행은 타임머신을 탄 듯, 나이를 잊게 했고 어릴 적 순수했던 추억 속으로 안내했다.미얀마 여행을 바탕으로 책도 발간했다는데
은퇴 후 공식적인 이력보다 은퇴 후 새로운 삶에 더욱 관심이 많아져 ‘원시를 찾아서’ 여행하기 시작했다. 몽골, 인도의 라다크 등 때 묻지 않은 곳으로 오지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미얀마가 ‘나에게 딱 맞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열여섯 차례 미얀마 여행을 했다. 그 결과가 최근 출간한 ‘뜻밖에 미얀마’이다. 이 책은 내가 누비고 다닌 미얀마에 대한 사랑의 기록이다.앞으로 계획은?
다양한 버킷리스트를 실천 중이다. 들꽃사진 찍기, 결혼식 주례 100번 서기, 한국의 사찰 100군데 돌아보기 등이다. 틈만 나면 사진을 찍고 기록한다. 버킷리스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항목은 두 손자와 몽골의 초원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다. 한번 꽂히면 깊숙이 파고드는 그는, 오늘도 사람과 세상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