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제로페이’...순항 할까

2020-01-27     파이낸셜리뷰
박원순
[파이낸셜리뷰=서성일 기자] 제로페이는 정부가 지난달 20일부터 서울시와 경남 창원시, 부산 자갈치시장 등 3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는 지역별로 유동인구가 많고, 소상공인 점포가 밀집한 핵심 상권 109곳을 제로페이 시범상가로 지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는 이미 서비스를 개발해 운영 중인 카카오페이나 유비페이를 배제하고 있다. 이는 카카오페이와 유비페이가 서울시와 중기부가 채택한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서다. 때문에 당초 소상공인의 수익 보존을 위해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제로페이가 일선 현장에서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부터 전국으로 확대 방침

27일 정부당국에 따르면 중기부는 오는 28일부터 수수료 부담 없는 '제로페이'의 전국 가맹점을 본격적으로 모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제로페이
제로페이 가맹점은 지난 23일 기준 4만699개로, 최근 가맹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범상가 운영에 따라 본격적으로 가맹점 확산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는 게 중기부의 관측이다. 중기부는 제로페이 시범상가별로 다음 달 말까지 지방중소벤처기업청, 지자체, 소진공이 협업으로 가맹점을 집중 모집해 제로페이 전국 확산을 위한 거점(점 단위)으로 운영하고, 지역별 핵심 상권(면 단위)으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GS25, 이마트24 등 6대 편의점은 가맹본부를 통해 4월까지 제로페이 일괄가맹을 추진하기로 했다. 6대 편의점에는 CU,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씨스페이스 등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교촌치킨, 골프존 등 프랜차이즈의 경우에도 제로페이 상생프랜차이즈 사업에 참여해 순차적으로 가맹등록을 추진할 예정이다. 일괄가맹을 통해 가맹점의 결제수수료 인하에 동참한 경우 공동마케팅 및 프랜차이즈 지원사업 우선 지원한다. 또한 소상공인연합회, 외식업중앙회,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등 소상공인 협·단체 및 지자체와 제로페이 가맹점 확산을 위한 협업체계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다음달에는 광역 시·도 국장급으로 구성한 전국 협의체와 지역별 실무 TF를 운영한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번 시범상가 지정과 결제사업자 추가 모집은 제로페이를 확산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라며 “제로페이가 명실상부한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도록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출처=제로페이

제로페이, 순탄하기만 할까

이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제로페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 몇몇 대기업이 이미 관련 시장에 진출해 고배를 마신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방선거에서 급조한 공약을 섣불리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까지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01년 SK텔레콤은 ‘모네타’라는 결제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휴대전화에 신용카드를 탑재하고, 매장 단말기에 모네타 동글(dongle, 전용 수신기)을 설치해서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맹점은 동글을 설치해야 했고, 사용자는 휴대전화에 신용카드 기능을 넣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결국 해당 서비스는 성공의 벽을 넘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글의 구글페이, 애플의 애플페이, 미국 통신사업자들이 연합해 설립한 소프트카드 등 새로운 결제 서비스도 성공하지 못했다. 소프트카드는 파산 하기까지 했다.
 
 

제로페이

제로페이가 뭐길래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수수료가 없는 결제 서비스로, 서울시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기 위한 대책으로 추진하기 시작해 정부 차원에서도 도입을 지원하고 있다. 앱투앱 결제 방식으로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현금을 주고받지 않아도 직접 통장을 통해 현금이 지불되며, 중간 결제 업체의 개입이 없어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2015년 기준 서울시의 소상공인은 66만 개, 128만 명으로 전체 사업체의 84%, 전체 종사자 수의 25%에 달하며, 개인택시·식당·편의점 등 생계형 업종에 집중돼 있다. 연매출액 기준 8억원 이하의 가맹점은 0%, 8~12억원대의 가맹점은 0.3%, 12억원을 초과하는 가맹점은 0.5%의 수수료가 설정됐다. 이는 기존 신용카드 수수료율인 0.8~2.3%에 비해 평균 1.63%가 낮은 수준이다.

제로페이가 관련업계에서 부정적인 이유

관련업계는 결제 서비스에 대해 이해도가 부족한 정치인과 일부 공무원들이 하루아침에 시스템을 설계하고 급조해 탄생한 것이 ‘제로페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제로페이
뿐만 아니라 이렇게 급조된 결제서비스를 기존 사업자들에게 도입하라고 큰소리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어차피 준비가 부족했던 일부 업체들이나, 그냥 이럴 땐 굴복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업체들만 줄을 섰다. 더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업체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더 좋은 구조를 가진 업체들로서는 기존에 투자한 것이 있는데 이를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업체는 정부 방침에 따르는 척하면서 비용을 줄여볼까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금융결제원의 오래된 구조를 답습하고 있고, 이 구조에 정부기관이 또 들어와 결제 서비스 과정에 단계가 하나 더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구조라면 비용은 더 커지는 셈이다. 그런데 정부는 은행에 수수료를 덜 받으라고 강요하는 모양새다. 고비용 구조를 채택하면서 수수료는 덜 받으라고 하는 상황이다. 현재 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와 있지만, 정부의 추진력이 약해지는 순간 수수료를 높이거나 채산성이 안 맞다는 이유로 사업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취약한 구조다. 관련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저비용 구조를 만들고 참여자가 지속적으로 사업에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며 “현재 제로페이는 경영학의 비즈니스 모델 이론과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로페이와 기존 결제 서비스와 다른 점은

금융결제원이 참여하는 제로페이의 구조는 기존 카카오페이나 토스 등이 가지고 있는 구조와 다르다.
출처=제로페이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카카오페이와 토스는 송금자와 수신자의 은행이 다를 경우 타행 계좌이체 수수료를 사업자인 카카오와 토스가 부담한다. 사업주도자가 자신의 사업 계획 하에 초기 자본을 투하해 타행 계좌이체 수수료를 부담하면서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갑자기 정부기관이 나타나 다른 방식의 결제 시스템에 참여하라고 하고 있다. 카카오와 토스에 솔루션을 공급하던 기업들은 정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양상이다. 카카오와 토스는 이미 구축한 솔루션에 기반해 사업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난데없이 정부가 쓰라는 솔루션(아직 제대로 구축도 안 되어 있는)을 쓸 것인지 고민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은행들에게 실력 행사를 하며 타행 계좌이체 수수료를 감면해 준다면 이에 편승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는 희박한 모습이다.

앞으로 나아갈 점

스마트폰 중심의 결제 사업은 다르다.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없는 사업이다. 부연하면, 이미 민간 기업들이 다 구축해 놓은 사업이다. 때문에 정부가 들어와야 할 여지가 크지 않다. 관련업계는 정부가 사업시행을 진행한 지금이라도 방향만 결정하고 표준만 정하고 떠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정한 표준을 모든 사업자에게 개방해 결제 사업자들이 소비자 편익과 상점 편익을 위해 자율경쟁에 맡기길 바란다”면서 “그렇게 되면 제로페이는 저절로 순항하고, 그만큼 지속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