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카드사들
2020-02-18 서성일 기자
대형 가맹점 2만3000곳에 “카드수수료 인상하겠다”
18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삼성·신한·KB국민·현대·비씨·롯데·우리·하나 등 국내 주요 카드사는 최근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에 다음달부터 카드결제 대금의 가맹 수수료율을 현행 1.8~1.9%에서 2.1%까지 인상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상을 통보한 곳은 이들 통신 3사를 비롯해 대형마트, 프랜차이즈업계, 호텔 등을 포함해 연매출이 500억원을 웃도는 대형 가맹점 2만3000여 곳인 것으로 전해진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연매출 500억원 이하에 대해선 수수료율을 낮췄기 때문에 수입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율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카드사들은 연매출 500억원을 초과하는 대형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이 예정대로 인상된다면 가맹점 수수료 수입이 5000억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우대 수수료 적용 대상 가맹점 범위가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확대된 데 따라 축소된 수수료 수입(약 5800억원)의 86% 가량을 상쇄하게 되는 모양새다.대형 가맹점, 일제히 반발 “왜 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국내 주요 카드사들의 카드수수료 인상에 대해 대형 가맹점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특히, 통신사들은 카드 수수료율 인상을 수용할 수 없다며 이의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 통신사들은 수수료 인상 방침을 백지화하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카드 수수료율이 인상된다면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줄어드는 수수료 수입 보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통신사 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백화점, 프렌차이즈 업계 등 대형 가맹점은 일제히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며 내린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사실상 대기업이 부담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대형 가맹점들이 반발하는 이유
대형 가맹점들이 카드사들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 정책에 반발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연매출 500억원을 초과하는 가맹점의 수수료율은 법령으로 강제 적용되는 대상이 아니다. 수수료 원가(적격비용)에 각 카드사가 마진을 붙여 개별적으로 정하는 방식이다. 카드사가 수수료율을 기존보다 인상할 경우 적용 한 달 전에 가맹점에 통보하고, 가맹점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소상공인에게 못 받은 가맹점 수수료를 대기업이 대신 내라는 것이냐”며 “이용이 많은 단골고객에게 더 돈을 끼얹는 경우는 어느 산업에서도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소비자에게도 ‘불똥’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른 불똥은 대형 가맹점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예를 들면, 국내 주요 카드사들이 그동안 시행해 온 2~6개월 무이자 할부가 올해 들어 5개월 이하로 축소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민간연구기관인 파이터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보면 득보다 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올해를 기점으로 부가서비스 축소뿐 아니라 카드 연회비 인상에 이르기까지 소비자 부담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한곳을 누르면 다른 한 곳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이르는 ‘풍선효과’라는 말이 있다”며 “정부의 국민을 위한 정책은 일면 이해가 가지만 시행에 있어서는 조금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