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5월 31일 길을 만든다.

2020-05-31     파이낸셜리뷰

불굴의 의지 앞에서는 높은 산도 몸을 낮춘다. 우리는 길을 찾거나 만들게 될 것이다.

- 한니발(Hannibal) -

[파이낸셜] 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는 지중해 세계의 초강대국이었다. 28살에 불과했던 젊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지금의 튀지니) 장군인 한니발은 10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에스파냐를 출발, 참모들이 극구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군의 허를 찌르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으면서 “길을 찾을 수 없다면 만들라.”고 외쳤다. 그 당시 눈병을 치료하지 못해 한쪽 눈을 잃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부하들을 독려하여 알프스 산맥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평생의 목표로인 “반드시 로마를 쓰러뜨린다.”는 꿈도 스키피오에게 패함으로써 헛된 꿈이 된 것이다. 한니발은 전쟁의 실패 책임을 자신에게 묻는 정치인들을 피해 망명했다. 그리고 티레, 시리아 등을 떠돌며 로마에 복수할 방법을 모색했으나 헛수고였다. 기원전 183년, 비티니아 왕이 로마군에게 그를 넘겨주기로 결정했음을 듣고, 그는 독약을 마셨다. “아, 카르타고여! 나를 용서해 다오!”그는 죽어가면서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가 죽고 37년 뒤, 로마는 몰락할 대로 몰락한 카르타고에게 최후의 싸움을 건다. 그리고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는 멸망했다. 로마군은 도성 안의 모든 남자를 학살하고, 모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잡아갔다. 심지어 나무와 풀까지 불사르고는 소금을 대량으로 뿌려, 다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한니발의 리더십은 섬세함에서부터 대범함까지 일관했다. 전쟁이 끝나면 부하들과 원주민 포로들을 고향에 돌려보내는 관용과 부하들의 세세한 것 까지 챙겼다. 한니발은 고대 군인들의 갈증과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식초를 갖고 다녔으며, 식초를 이용해서 행군에 방해하는 바위를 갈라지게도 했다.

오늘의 역사: 교향곡의 아버지 오스트리아 하이든 (1732- 1809) 별세

키가 작고 땅딸막한 몸매에 유머가 넘치는 하이든을 당시의 사람들은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하이든의 음악은 모든 장르를 포용하는 대범함과, 즐거움을 보였다. 하이든은 그 생애 동안에 108개의 교향곡, 84개의 4중주곡, 4개의 오라토리오, 34개의 가극, 그밖에 모든 악곡에 걸쳐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베토벤을 지도했던 하이든은 모차르트와 친구로서 우정을 나눴다. 그는 가난한 농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일생동안 고통과 행복의 반복된 생활을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하이든이 당시 유럽 최대의 영지(領地)와 재산을 가진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비호를 받아 악장 베르너가 사망하자 그를 악장에 임명했다. 30년간 하이든은 이 세상과 단절된 대저택에서 단원과 함께 기거하면서 많은 명곡을 완성해 냈던 것이다.

1798년 4월, 최대 걸작인 오라토리오 ‘천지 창조’를 작곡했다. 그 후 갑자기 병상에 누운 하이든은 가족을 모두 머리맡에 모아놓고 자신이 애용하는 클라비어 앞에 앉아 자작의 국가‘황제 찬가’를 쳤다.

그리고 5월 31일에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