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6월 8일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라.

2020-06-08     파이낸셜리뷰

이 길이 중심인가, 아닌가? 모든 길은 똑같다. 어떤 곳으로도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길은 숲을 지나거나 숲으로 들어가기만 할 뿐이다.

이 길이 중심이란 말인가? 중심이라면 좋은 길이요. 중심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길이다.

- 돈 후앙 ‘카를로스 카사타네다’ 중에서-

[파이낸셜리뷰] 경영자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 중의 하나가 분명한 기준에 의한 성과 측정이 아닌 좋고 좋은 게 좋지 라는 부하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것이다. 부하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칭찬이나 듣기 좋은 말만 하거나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포퓰리즘(Populism)에 빠진다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 목적 중 하나인 이윤을 내지 못해 고용 창출 하지 못하고 제 때 월급도 주지 못해 사회에 부담 주어서는 곤란하다. 회사의 분명한 미션과 사명을 찾는 엄격하고 냉철한 기준을 세운 다음에 인간적 배려를 하는 것도 늦지 않았다. 리더는 모든 상황, 모든 분야에서 최고인 슈퍼맨이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추구하다보면 이상적인 리더가 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타고 날 수도 있지만, 효과적인 리더는 만들어진다.’ 구호와 선동으로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리더 말고 남에게는 후덕하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잣대를 대는 많은 리더가 있을 때 제대로 된 기업이 된다. 말이 아닌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일을 통해 소명을 깨달을 때 의미가 있다.

오늘의 역사: 로베르트 슈만 [1810~1856] 출생

독일의 작곡가. 작센의 츠비카우 출생. 아버지는 저술도 하는 서적상이었고 어머니는 신앙심과 음악적 감성이 깊은 사람으로 슈만은 아버지의 문학적 취미와 어머니의 섬세한 감수성을 이어받았다. 11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였으나 16세 때 아버지가 죽자 그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음악가가 되려는 희망을 버리고 1828년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치히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라이프치히에서 당시의 명교사 F. 비크를 알게 되어 그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또한 슈베르트의 영향이 많이 풍기는 가곡과 피아노곡 등의 작곡도 시작하였다. 1832년 오른손 넷째 손가락을 다치자 피아니스트가 될 꿈을 단념하고, 이때부터 작곡과 평론만을 지향하여 ‘나비’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에 의한 연습곡’ 등의 피아노곡을 작곡하였으며, 34년에는 ‘사육제 Carnaval’를 내놓았다.

슈만의 작품은 낭만주의 풍과 모든 분야의 작품을 내는 뛰어난 음악가다.

하지만 그의 정신장애의 징후는 이미 1833년경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1844년경부터는 창작력이 왕성한 시기와 우울증에 빠진 시기가 서로 교차되어 나타났으며, 1854년 2월 심한 망상에 사로잡혀 라인강에 투신했으나 다행히 구조되어 그 후부터 본 교외의 엔데니히정신병원에 수용되고, 1856년 여름 2년간의 투병 끝에 46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