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국의 나의 역사, 자서전을 쓰다 기고] 김미희(주부)
2020-12-12 김대국
[파이낸셜리뷰] ‘나의 역사’ 자서전 원고 청탁 의뢰가 들어왔을 때 내가 무슨 이력이 있다고 쓰겠냐면서 고사를 했다. 하지만 결국 두손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노트북 앞에 앉고 나니 옛일이 주마간산처럼 지나갔다. 나는 강남에서 태어난 주부 김미희다.
서울 강남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서 부러워할 수 있지만 나는 어릴 때 그리 부유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들어가보니 내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만큼 부모님이 나를 아무런 걱정 없이 키우겠다면서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다. 요즘 82년 김지영 등으로 인해 페미니즘이 일반화됐고, 여성들의 인권 등이 향상됐다는 점을 살펴보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무슨 꿈이겠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자’에게 내 모든 인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평범한 생활을 했다. 남들이 다니는 학교 그냥 다녔고, 남들이 공부하면 나도 공부했다. 자존감을 갖고 스스로 움직이는 그런 인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 들어가면서 달라졌다.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됐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높아졌다. 이에 수동적인 삶에서 능동적인 삶으로 바뀌었다.
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보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대학을 다니면서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내 꿈이라는 것이 보다 확실해졌다. 또한 남편만 바라보는 그런 인생은 살지 않겠다는 생각도 확실해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면서 결혼을 꿈꿨다. 그리고 드디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인생의 반려자는 부유한 집안도 아니고, 남들에게 내미는 그런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기에 결국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딸을 낳았다.
이제 그 딸은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됐다. 물론 나는 현재도 조그마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하지만 현모양처가 꿈이기 때문에 일과 가정 모두를 병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과 가정을 모두 병행하는 것을 두고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희생이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다.
남편을 위해 내 딸을 위해 살면서도 내 인생을 챙기기 때문이다. 행복은 어느 준거집단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정을 위해 일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기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현모양처’가 꿈이었기에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생각에 대해 ‘그건 희생이야’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