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香(심향 강상빈 박사)의 생애와 사상 9편
2020-02-19 강상빈 박사
(6) 전역 및 취업 준비 지원, 회사 입사
드디어 세월만 가기를 노래하던 것이 이루어 졌다. 1972년 4월 근 34개월의 장기간의 육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하게 되었다. 전역을 하고 무엇을 할까? 농촌에서 소를 키울까? 농촌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해보았으나 농촌에 정착 할 마땅한 땅이 없어, 우선 취업을 해서 농촌사업 자금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경제가 너무 어려워 직원 채용하는 곳이 별로 없으며, 간혹 신문에 게재되는 사원모집 광고에 나온 지원 자격을 보면 상대 출신과 영어 전공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루 빨리 취직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속에 지내던 어느 닐 나의 눈을 의심케 하는 기업채용광고를 보게 되었다. 전공과목 관계없이 대졸자를 뽑는다는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입사시험 지원서를 제출하고 시험을 보러가니, 2명 선발에 800명이나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차 필기시험에서 20명을 선발하고, 2차 면접에서 5명을 선발하고 최종면접에서 2명을 선발하는데 나에게 행운이 돌아왔다. 그 당시 우리나라가 살 길은 오직 수출 뿐 이라며 다양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강화되고 있었는데, 이에 따라 늘어나는 수출 물량을 수송하는 해운회사의 조직을 확대하는 일환으로 직장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참으로 열심히 일을 하였다. 대학시절 일찍이 삼륜차사업으로 세상을 알고, 군대시절 보안부대 비파요원으로 활동하면서 배우고 경험한 일들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입사하여 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계장급 이하 전 직원(약60여명)이 점심시간에 모 식당에 모두 모였다. 주요 이슈는 직원 처우 개선으로 회사 측에 급여인상을 강력히 요구하지는 것이었다. 아무도 반대 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 찬성하였다. 48 시간 휴무 파업 투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난 가능하면 업무를 수행하면서 경영진과 대화를 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참 사원들은 말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난 원칙적으로 휴업 파업을 반대하지만 시한부 스트라이크를 꼭 해야 할 경우 반드시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으로 모두가 어떠한 경우에도 상사로부터 각개 격파를 당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하여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 발언이 추후 강성 발언자로 경영진에 알려져 내가 강력 주동자로 해고 대상자 리스트에 올라간 것이다. 스트라이크에 참여한 모 계장이 부서장의 긴밀한 설득에 마음이 약해져 우리가 발언한 내용들을 모두 폭로 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과장 부서장 회의, 임원회의에서 스트라이크를 주동한 2명을 해고하기로 결정하여 최고 경영자에게 보고를 하였다. 이 내용을 접한 사장은 어떻게 이 두 사람이 주동자라는 것을 알았냐고 물으며, 이 두 사람은 회사에서 잘 키우고, 이 내용을 고발한 직원은 의리도 없고 자기 사욕만을 추구하는 비겁한 자임으로 오히려 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
그리하여 나는 계속 회사를 다닐 수 가 있었다.
1976년 5월 8일에는 회사 임직원의 축하를 받으며 혼인예식을 올렸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니 더욱 열심히 영업활동을 하여 회사 내부 및 동종업계에도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직원들이 있는 회사에 다닌다는 것이 점점 싫어지지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도 싫어졌다. 그래서 해외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해운업계에 계신 고등학교 선배 한분이 나를 찾아와 자기 회사에 같이 근무하자는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이 싫어 캐나다 이민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나의 단호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 선배는 그 회사 윗분들까지 동원하여 나를 설득하였다. 캐나다 가기 전까지라도 함께 일하자는 것이었다. 급여도 4배 보너스도 4배 영업활동비도 4배를 제의하기도 하였다. 난 그렇게 많이 받고 가서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며, 나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면 기존 직원들의 반발이 심하게 되어 회사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도 드렸다. 그러나 선배의 끈질긴 설득에 내가 더 이상 버틴다는 것이 교만이라고 생각되어, 나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지 않아도 좋다는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결국 수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