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뷰] 한국판 양적 완화, 국회에 공 떠넘겨

2021-03-27     어기선 기자
윤면식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한국은행이 사상 첫 ‘한국판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꺼내든 것이다. 한은은 지난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4월부터 6월까지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하기 위해 91일 만기 환매조건부채권(RP)을 주 단위로 정례 매입키로 했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파고 경과 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을 말한다. 한은이 공개시장운영으로 RP를 매입해 은행에 자금을 공급하면 은행이 이 자금을 활용해 정부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장에 유동성(통화)이 풀린다.

금융위기에도 취하지 않았던 방식

무제한 RP 매입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에도 취하지 않았던 방식이다. 그만큼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은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미 정부가 발표한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신속히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6월까지 매주 화요일 입찰을 하는데 4월 첫 입찰만 2일 목요일에 진행한다. 모집된 유동성 공급 수요는 전액 배정하고 금리 상한선은 기준금리(0.75%)에 0.1%포인트를 가산한 0.85%다. 한은은 또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 11곳을 추가하고 대상증권을 8개 공공기관 특수채로 확대했다. 유동성 공급 속도와 양을 늘리기 위함이다. 7월 이후에는 시장 상황과 입찰 결과 등을 고려해 조치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한은은 이번 조치를 사실상 양적완화라고 표현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무제한 양적완화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을 빗댄 것이다.

미국 양적완화와 다른 점, 결국 ‘국회’ 동의 필요

윤명식 한은 부총재는 미국 등의 양적완화와 같은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가 오늘 발표한 조치는 매입 채권 종류에 차이가 있고 금리 인하 여력 등이 달라 선진국 양적완화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공급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양적완화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양적완화와 한국판 양적완화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회사채를 우리나라는 현재 구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반응은 한은이 연준처럼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직접 매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윤 부총재는 정부가 보증하면 회사채 매입도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법은 회사채, CP를 직접 매입하는 것은 민간이 발행한 채권의 매입을 금지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정부보증 없이는 시행하기 어렵다. 문제는 회사채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려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국회에서 회사채에 대한 정부 보증을 통과시켜줘야 실질적인 양적 완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총선 앞둔 국회, 양적 완화 나설까

문제는 여야는 4.15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선거운동에 정신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회사채에 대한 정부의 보증을 국회에서 처리하기 힘들다는 것이 정치권의 목소리다. 미국과 같은 양적 완화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나서야 하지만 여야는 현재 총선에 매몰돼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러는 사이 기업들은 더욱 힘들어진다는 평가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해소해야 한은이 회사채를 매입하는 진정한 양적 완화가 이뤄진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