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香(심향 강상빈 박사)의 생애와 사상 18편
2021-04-22 강상빈 박사
6. 세계 해운시장 불항과 M&A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에 새로운 회사가 탄생되었다. 내가 처음 입사한 회사의 일본 국적 본사인 Japan Line과 두 번째 입사한 일본 국적 본사인 YSL(Yamasita Shinion Line)이 국제해운시장 불황으로 정기선 콘테이너 운항 사업 부분을 통폐합 하게 되어 한국에 대리점도 통폐합하게 되었다. 일본 Japan Line과 YS Line이 통합한 회사 이름은 NLS(Nippon Liner System)이었으며 한국 대리점은 흥아해운(Japan Line) 직원 출신과 오주해운(YSL) 출신 직원 각각 50;50 비율로 조직한 회사로. 올림픽기간에 창립되었다고 해서 ‘올림피아해운’이라고 작명하였다.
본사인 NLS는 OOCL, NOL 선사와 3 PARTY JOINT VENTURE SYSTEM으로 운영하는 SPACE CHATER 형태의 콘테이너 화물 정기선 운항회사 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대리점은 한국에 주어진 스페이스만 채우면 되는 회사로 영업실적이 떨어져도 안 되고, 주어진 할당(ALLOCATION) 보다 더 많이 실을 수 도 없고 다만 정해진 선복만 채워야하는 제한 요소가 있었다.
또한 직원 수가 너무 많아 아무리 영업 실적을 최고치로 달성하더라도 흑자를 낼 수 없는 구조이었다. 본질적으로 문제점을 앉고 탄생된 기업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영업 업무를 총괄하게 된 나는 사장 부사장 두 분을 상사로 모시고 부하직원들과 최선을 다하여 항상 주어진 스페이스를 다 채우는 실적을 올려 본사로 부터 최우수 대리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내가 제안한 전 세계대리점 영업촉진 회의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 1989년 11월 본사가 있는 동경에서 전 세계 대리점 영업책임자들이 모여 영업촉진회의(E/B sales promotion meeting)를 시작으로 활발한 영업전략을 추진하여 마켓 쉐어를 늘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해운불항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극복 할 수는 없었다.
드디어 NLS의 운명이 시한부가 되었다. 3년간 공동운항하기로 한 3자 계약(three party ontract)이 끝나면 더 이상 운항을 하지 않고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지속되고 있는 국제해운 시장 불황으로 일본해운사 구조조정에 포함되어 NYK에서 NSL를 흡수하기로 함에 따라 전 세계 대리점들도 문을 닫아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 대리점인 올림피아 해운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6개월 후에는 회사가 없어진다는 비보가 있었지만 나는 직원들을 설득하여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다.